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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08. 2020

부모님이랑 사이

자녀의 불만

"부모님이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부모의 감시와 통제가 심하다고 불만을 가진 청소년의 사연이다.

원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고 못 하게 한단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이라는 소리는 듣기도 싫다고 한다.

(1월 8일 참나원 방송)



사연자는 청소년이다.

말썽꾸러기도 아니고 모범생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십대다.

그의 불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기 쉽다.

믿고 맡기기보다 보살피려고 한다.

그래서 자녀가 커가면서 부모와 부딪히게 된다.

좀처럼 마음이 만나기 어렵다.


'말썽을 부린 적도 없는데 왜 제재만 하느냐'는 불만을 보자.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와 수많은 약속을 했을 것이다.

과연 그 약속을 훌륭히 잘 지켰을까.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할 때 당사자들의 관점이 다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쪽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상대는 '고칠 생각을 해야지' 한다.

그래서 잔소리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잊고 잔소리만 기억하면서 불만이 생긴다.


어린아이가 자기를 성찰하면서 고쳐나가려는 마음까지 먹는다면?

부모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식이 그렇게 기특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꾸 성장을 채근하게 된다.


서로의 시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섣불리 대응하면 곤란하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

이것이 부모의 최선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부모 눈에는 자식의 미숙함이 보인다.

그 미숙함을 빨리 고쳐주고 싶다.

이런 조급함 때문에 거리가 생긴다.

어느 한쪽의 과실이 아니다.


만약에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충고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다.

문제는 믿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위험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믿어주면 건강하게 성장할 확률이 커진다.



상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벽이 생긴다.

모르는 줄 알아야 알려고 하는 마음도 낼 수 있다.

어쩌면 내 자식 내 부모일수록 더 모를 수 있다.

귀담아 들어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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