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두 달 동안 골절로 입원해 있는데 병문안 온 친구가 없어요."
연락을 해서 오라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울려 놀 때는 그렇게 잘 모이더니 내가 힘들 때는 외면하는 것 같다.
인간관계에 회의가 든다.
(6월 24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실망이 크다.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들한테 실망했다.
아파서 병원에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친구들한테 나는 심심풀이 대상이었나 싶다.
친구라면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름대로 먼저 연락도 하고 관계에 소홀하지 않았기에 배신감이 든다.
혹시 내가 속이 좁은 것인가 혼란스럽기도 하다.
친구와 지인은 차이가 있다.
지인은 그저 아는 사이다.
안면이 있으면 지인이다.
하지만 친구는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함께 하는 것이 친구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우어야 친구라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줄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연자한테는 이런 친구가 없었다.
병문안 온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인간관계에 회의감까지 생긴 것이 당연할까.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정말로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한 친구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 정국이 아닌가.
판단기준의 현실성도 살펴보아야겠다.
보통 이상적인 기준을 갖는다.
외모는 탤런트급이어야 하고 실력도 그 분야에서 최고에 버금가야 한다.
최고가 아니면 그저 그런 수준이라 평가한다.
친구관계에서도 이런 이상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목숨도 대신해줄 수 있는 친구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진정한 친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준에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기준 때문일 경우가 많다.
기준을 낮추어 현실에 맞추면 불만도 사라진다.
이상적인 지향점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지향점이 기준이 되면 곤란하다.

부족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와 남을 좀 더 넉넉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실망과 회의감만 커진다.
빡빡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