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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29. 2018

명상을 품은 상담

상담의 수준

은사님께 상담의 깊이를 여쭈어 본 적이 있다.

당시 은사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한테 상담을 지도하고 계셨고, 상담을 한다는 사람들과 다양한 교류를 가지시면서 상담에도 수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상담자의 숙련도에 따라 상담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은사님께서는 어떻게 구분하시는지 궁금했다.



"내가 보기에 상담에는 세 가지 정도의 수준이 있는 것 같아. 기(技) 수준의 상담, 예(藝) 수준의 상담, 그리고 도(道) 수준의 상담."

"선생님께서는 어떤 수준이십니까?"

"하하하. 나는 기 수준은 넘은 것 같고 예 수준을 바라보는 정도랄까?"

"저는 도 수준의 상담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렇게 맹랑하게(?) 다짐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은사님의 은혜를 갚는 것은 제자가 청출어람으로 스승님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그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은사님께서 하시지 못한 영역을 찾아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확신에 차 있었다.


먼저 은사님께서 말씀하신 세 수준을 풀어보자.

기 수준의 상담은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뜻한다.

상담의 이론과 학문적 배경을 두루 갖추고 내담자의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기법을 적용하는 수준이다.

합리성을 가지고 내담자를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면서 상담 목표를 이루어간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앞뒤가 맞는 상담을 한다면 기 수준의 상담이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기 수준의 상담은 상담심리학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완성된다.

논리적인 분석과 철저한 준비성을 바탕으로 내담자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어서 내담자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훌륭한 상담 선생님으로서 역할을 다한다.

학술지에 실린 우수한 논문처럼 기 수준으로 완성된 상담은 상담 종사자들에게 공부가 되고 모범이 될 만한 학문적 접근방식을 갈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에 수준의 상담은 무엇일까?

"와! 저건 예술이다." 하고 감탄할 때가 있지 않은가.

상담이 예술 차원으로 승화되어 아름답기까지 한 수준이다.

학문의 수준을 넘어서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깊은 감동이 있는 수준이다.


예 수준의 상담은 논리를 뛰어넘는다.

공감의 예술!

논리적인 설명으로 다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이 들어있다.

계산이나 평가를 넘어서서 마음 깊이 공감되는 그 무엇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내담자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은사님께서 예 수준의 상담을 바라보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겸양의 표현이었다.


은사님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들어보면 은사님의 상담은 예 수준의 상담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낮추시면서 예 수준을 바라본다고 말씀하신 것이 그분의 도량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은사님은 에 수준에서 도 수준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하셨던 분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도 수준의 상담은 무엇인가?

상담이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린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굳이 상담이라는 형식 속에서만 상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자체가 상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도 수준의 상담은 상담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상담의 대가라 하는 분들이 하시는 상담을 말씀하시거나 상담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어렵지 않다.

그냥 일상에서 흔히 하는 말로 상담을 하는데 내담자한테는 이것이 깊이 박힌다.

전문적인 어려운 학술용어를 전혀 쓰지 않고 일상의 쉬운 말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간다.

이런 상담은 도 수준의 상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담이 실제로 인간을 행복할 수 있으려면 도 수준이 되어야 한다.

기 수준의 상담은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관념적인 수준의 작업이다.

예 수준의 상담은 마음이 움직이고 가슴으로 깊이 느끼는 수준이다.

일상에서 행동으로 변화가 나타나야 실제 효과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내담자가 상담자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삶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도 수준의 상담이 되어야 내담자의 실제 삶이 바뀐다고 보장할 수 있다.



도 수준의 상담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자신을 살피고 알아가는 명상이 기반이 되었을 때 상담은 도 수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의 삶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다.

상담자가 아무리 유능해도 내담자의 삶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내담자가 일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끔 이끌어주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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