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Dec 31. 2018

기억을 다루는 방법

인지 왜곡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아서 애가 탄다.

그만 잊고 싶은데 자꾸 떠오른다.

이렇듯 기억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럽다.

소중한 기억은 잘 간직하고 끔찍한 기억은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억이란 행위를 살펴보자.



학습할 내용을 한 번 읽고 나서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얼마나 기억에 남아 있는지 연구해 보았더니 약 30% 정도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읽은 내용을 한 번 복습했더니 70%까지 기억에 남더란다.

기억에 남는 것과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기억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기억 과정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

부호화(encoding), 저장(storage), 인출(drcoding)이 그 셋인데 입력하고 저장했다가 꺼내 쓴다고 보면 된다.

부호화는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해서 저장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창고에 물건을 놓을 때 종류별로 모아 놓듯이 기억할 정보를 해석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저장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전기적인 신호를 화학적인 신호로 바꾸어 안정적으로 보관하는 것이다.

인출은 저장된 정보를 필요에 따라 꺼내는 작업이다.


시험을 볼 때 공부한 내용을 기억해내어야 답을 쓸 수 있다.

문제를 보고 학습했던 기억을 더듬어서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어 답을 쓴다.

애초에 부호화 과정을 소홀히 했으면 정보가 어디에 들어 있는지 잘 찾기 어렵다.

저장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물건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창고에서 물건을 찾는 것처럼 혼란스럽게 된다.

인출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엉뚱한 내용을 끄집어내어서 오류를 범한다.


물류 창고에 물건을 넣어두고 오랫동안 놓아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관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썩을 수도 있다.

물건이 변질된다는 말인데 기억도 이와 비슷하다.

아니 기억은 오히려 더 심하게 변질되기 쉽다.


엄청나게 많은 자극을 처리해야 하는 뇌는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려 한다.

그래서 기억도 그냥 원래 상태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에 맞추어 왜곡이 일어난다.

옛날에 고생했던 일들은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경험으로 변질되곤 한다.

기억을 유지하는 과정에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힘든 감정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조화롭고 무난하거나 좋은 것으로 포장된다.

불완전하고 미완성이던 경험이 기억 속에서 완전하고 완성된 깔끔한 것으로 뒤바뀌곤 한다.

고통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억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억을 가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괴롭고 불편한 기억들을 가다듬어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데 든든한 자산이 되게끔 한다면 굳이 기억을 피하거나 억누르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과거 기억을 떠올린다.

포토샾을 하듯 기억을 수정하고 가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직면과 공감이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

그냥 괴로움을 피하고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서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양심에 찔려서 더 큰 번민에 빠질 우려가 크다.

가다듬는 작업을 할 때 이치에 맞고 현실적이면서도 긍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좋을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혀서 현재 일상을 현명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자신의 기억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억은 진실이 아니다.

그 당시에 보고 해석하고 부호화해서 저장한 채로 유지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기억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재해석하고 직면하고 수정해가는 일이 가능하다.

기억에 젖어서 살 지 말고 기억을 다시 체험해서 마음을 풍요롭게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을 담은 명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