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 위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데 가족들은 공감을 해주지 않네요."
한 대학생의 하소연이다.
공감을 기대해도 좋을까.
자칫하면 아는 것이 병이 될 수 있다.
(3월 14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조용히 공부만 했다.
대학에 들어갔으나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힘들어서 우울해졌다.
동생이 "고3 수험생과 다른 게 없네."라고 한 소리가 신경 쓰인다.
부모님은 사연자가 단순히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한다고만 생각한다.
피상적인 위로를 하는데 별로 힘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데 주변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사연자가 대학생이 되면서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기대하며 참고 공부를 해 왔을까.
적어도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 처박혀서 지내야 하는 생활은 아닐 것이다.
기대가 좌절되면서 힘들어진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자신한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자가진단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깊은 관심과 배려를 보이지 않는 가족들한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연자가 자신의 의존성을 알고 있을까.
동생의 한 마디에도 크게 흔들리는 마음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른 사람한테 공감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할 수 없다.
공감을 하고 안 하고는 당사자 자신의 마음이다.
공감과 위로가 힘이 된다는 상식이 오히려 실망과 좌절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공감을 받지 못한다고 위로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일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삶을 살 수는 없다.
공감과 위로를 바란다면 스스로 자신을 공감하고 위로할 생각부터 하는 것이 좋다.
타인에게 공감을 받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것은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기만큼 자신을 알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자신을 공감해주지 않으면서 누구한테 바랄 것인가.
받으려 하는 마음이 클수록 만족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내는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실망하고 낙담하는 마음으로는 공감을 느끼기 어렵다.
누가 위로하고 공감해 주어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마음도 끼리끼리 어울린다.
스스로 공감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부르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