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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16. 2019

"소는 누가 키우는데?"

관심의 방향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는데?"

꽤 오래전에 코미디 프로에서 나왔던 유행어이다.

맥락도 없이 생뚱맞게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외치는 순간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

그냥 가볍게 웃고 말았는데 요즘 와서 내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소는 그냥 저절로 크지 않는다.

여물을 주고 보살펴야 한다.

당신은 소를 잘 돌보고 있는가?



사찰에 가면 벽화를 볼 수 있다.

벽화에 그려지는 그림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소 그림이다.

왜 소를 그려놨을까?

정확히 말하면 소를 찾는 그림, 곧 심우도(尋牛圖)이다.

전부 10개의 그림이라 십우도라고도 한다.


농경 사회에서 소는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었다.

어릴 때 소를 먹일 여물을 마련한다고 풀을 지게 한 가득 해 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여름방학 때 시골에 놀러 가면 옆집 형들은 늘 소여물 베러 간다고 바쁜 모습이었다.

당시에 어른들은 학교 가는 것보다 오를 먹이는 일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외양간에서 풀을 먹고 있는 소를 보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뿌듯했다.


그런데 소의 일상을 실제로 보면 여간 고단한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일을 하면서도 소는 그냥 가끔 "음메~"하는 소리를 내며 눈망울을 굴릴 뿐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소는 서둘지 않는다.

느릿느릿 제 걸음으로 일정하게 걷는다.

그래서 꾸준히 지속하는 것을 두고 소걸음 같다고 한다.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걸어라.' 하는 격언도 있다.


소가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던 것처럼 삶의 여정에 늘 마음이 함께 한다.

그래서 마음을 소에 빗대어서 표현한 것이 심우도라는 그림이다.

일상에 쫓겨 자기 자신의 마음도 돌보지 못하고 헐레벌떡 바쁘게 살 때 '소를 찾으라'라고 한다.

소를 찾는다는 것은 늘 함께 하고 있는데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는 자신의 본심을 찾으라는 말이다.

마음의 소를 찾는 10 단계가  있다.


소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끼줄을 들고 찾아 나서는 모습이다.

소의 흔적을 발견한다. 발자국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드디어 소를 본다. 멀리 소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를 얻는다. 소를 새끼줄로 잡은 모습이다. 소는 저항하고 있다.

소를 길들인다. 소를 묶어두고 길들이는데 머리 쪽은 하얗고 뒷부분은 검다(누렇다).

소를 타고 집으로 온다. 소에 앉아서 피리를 불며 자유롭게 간다.

소는 사라지고 사람만 있다. 무심의 경지를 상징한다.

소도 사람도 사라지고 하나의 원만 있다. 상대를 넘어선 절대의 원만한 본질을 상징한다.

다시 자연이 펼쳐진다. 본질에서 다양한 현상이 생김을 상징한다.

저잣거리로 들어간다. 일상의 삶으로 들어가 어울려 사는 모습이다.


소를 키우는 것은 다섯 번째 그림이다.

야성에 물들어 제멋대로인 소를 붙잡아 매어 두고 순하게 길들이는 모습이다.

소를 키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힘든 작업이다.

누렇거나 검은 소를 하얗게 길들일 때까지 실랑이도 하고 먹이도 계속 주어야 한다.

악습을 버리고 좋은 마음과 행동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상담도 소를 키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내담자가 자신의 소를 키우게끔 상담자는 안내를 한다.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만큼 익숙해질 때 소를 더 돌볼 필요도 없어진다.

내담자가 일상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상담도 마무리한다.

그런데 소를 상담자가 키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는 누가 키우는데?"

"자기가 키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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