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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un 27. 2021

아르바이트생고충

갑질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제멋대로입니다."

갑질이라는 횡포가 떠오르는 사연이다.

이런 사연에는 화가 난다.

갑질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당하는 사람들한테도 화가 난다.

(6월 27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출퇴근 시간이 지켜진 적이 없다.

그래서 시간을 계획적으로 쓸 수 없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냥 따르고 있다.


사연자는 사회가 원래 이런가 하는 의심이 든다.

불편을 느끼는 자신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든다.

부당한 처우를 그냥 참아야 하는 것인지 묻는다.

답은 물론 자신의 선택이다.


고용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계약에 따라 의무와 권한이 주어진다.

출근과 퇴근은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정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사연자가 받는 처우는 분명한 인권침해다.


그런데 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항의하지 않을까.

아마도 순한 사람들만 남았을 것이다.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연자는 어찌할 것인가.


만약 이것 말고 다른 부분에 문제가 없다면 이 상황에 적응할 수도 있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일터를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구나 알바는 임시로 하는 일이다.

알바를 하는 목적에 큰 지장이 없으면 사소한 불편은 감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정식으로 건의를 해볼 수 있다.

고용주한테도 불리하거나 불편한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영업시간이 들쭉날쭉하지 않게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출퇴근 시간을 지켜달라는 건의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화가 나는 것은 무기력증이다.

왜 밟히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는가 말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는데.

싸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타성에 젖으면 무감각해진다.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갑질에 저항을 포기하면 어찌 될까.

갑질을 방치하는 것은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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