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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기일, 아버지를 그리다

아버지 기일_160회

by 광풍제월

아버지 기일, 아버지를 그리다.

2025.9.12. 금(D-110)


2018년 9월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벌써 7년이 흘렸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더욱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어느 순간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아버지가 계셨다. 안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행동이나 모습은 아버지를 닮아있다.


2시 25분 안동에 계신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형님께서는 올여름 더워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나는 형님께 제사 때 내려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몇 년 전부터 형님께서 혼자서 제사를 모실테니 나와 대구에 있는 둘째 집 조카는 기일 때는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내려가지 않고 있지만 이때만 되면 꼭 죄를 지은 느낌이다.


추석 전 벌초를 상의하려 대구 조카와 상의해서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조카와 상의하니 교대근무를 한다고 해서 차가 밀리는 주말에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나는 9월부터 공로연수라 평일도 무난하다고 했다. 10월 1일이 좋다고 해서 그럼 그날 만나자고 했다.


아버지 기일, 2022년에 아버지의 그림자란 제목으로 아버지를 회상한 글이 있어 다시 한번 읽으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아버지의 그림자

2022.12.24. 김용건

나의 아버지는 해방 전에 태어나서 6.25 참전 등 근현대사를 지켜본 굴곡 많은 대한민국의 산 증인이셨다.

1932년 태어나서 2018년 돌아가셨다. 2018년 평균 수명이 82.7세이며 남자는 79.7세, 여자는 85.7세를 감안하면 아버지께서는 86세를 일기로 소천하였으니 평균은 넘긴 셈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집에서 떨어져서 생활을 하여서 아버지에 대한 밀접한 기억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생생하고 그다음부터는 방학 때 잠시 집에서 아버지와 생활한 기억뿐이다.


아버지는 2남 2여 중에서 3번째로 태어났다. 백부님이 계시는데 백부님께서는 양자를 가셔서 아버님이 차남이지만 할아버지를 모셨다. 백부님께서는 종손으로 양자를 가셔서 집안일은 거의 돌보지 않고 바깥출입을 중요시하게 생각하셔서 집안일은 거의 아버지가 다 하시게 되었다. 고모 두 분은 가까이로 출가하셔서 자주 친정에 출입하여서 고종사촌과는 어릴 때 친하게 지낸 기억이 있다.


내가 듣기로는 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영양에서 노름을 하여 재산을 탕진하셔서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빈손으로 안동으로 들어와 터를 잡고 열심히 재산을 일구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지금도 아버지 하면 제일 먼저 다음의 3가지로 떠오른다. 먼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부지런함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리 힘든 일을 하셔도 다음날은 항상 새벽에 일어나셨다. 일어나서 그날 할 농사일을 미리 하셨다. 옛날에는 거의 대부분 지게에 짐을 져서 날랐다. 아버지께서는 아침 먹기 전에 오전에 할 일의 1/3은 이미 달성을 하셨다.


두 번째는 절약정신이다. 아버지께서는 짠돌이 대회가 있다면 당연 일등을 하시고도 남을 위인이셨다. 어릴 때 시장에 따라가면 아버지께서는 자장면을 사달라고 졸라도 사주지 않으셨다. 기껏 껌 한 통 사주시면 크게 인심 쓰는 날이었다. 당신께서는 막걸리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셨다.

할아버지 모시고 7남매를 건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어린 내가 보기에는 매사에 아끼시고 절약을 몸에 베개 실천하시는 것이 얄밉기만 하였다.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와 함께 자리틀 하나 달랑 매고 맨손으로 들어와서 전답을 사들인 것을 보면 얼마나 안 쓰고 절약한 것인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넘치는 끼다. 꽃피고 새우는 시절에 마을에서 화전놀이를 가면 아버지께서는 가장 구수한 화전가를 부르면 필력 좋은 백부께서 두루마기 화선지에 화전가를 쓰셨다. 겨울철 농한기에 글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소설책을 읽어 주기도 하셨고, 판소리 한 소절도 불려주시기도 했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선소리꾼을 맡아서 구슬프게 망자의 혼을 달래는 타고난 재능을 보여 주셨다.


조용히 뒤돌아 보면 아버지의 그림자는 나에게도 전이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나도 어느 시점부터 새벽잠이 없어지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또한, 절약정신도 몸에 베어서 명품을 탐하지도 않고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는다. 방에도 사람이 없으면 제일 먼저 전등을 끈다. 다만, 넘치는 끼는 유산으로 물려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움이 있다. 이렇게 글로써 아버지를 회상할 수 있음도 넘치는 끼에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만족하여야겠다.

20140815_162418.jpg 아버지 모습(201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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