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사랑도 이별도 쉬웠다. 좋으면 사랑했고 반대로 서로 상처가 되어 힘들 땐 이별했다. 사랑과 이별이 이처럼 단순한 공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난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던 사랑을 했으니까. 그러나 매번 운이 좋은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랑과 이별은 정말 더럽게도 힘들고 어려웠다. 힘든 사랑이었다.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말을 지금도 정말이나 무척 싫어한다. 부모님이 매번 나에게 했던 조언이었다. 사정 있는 어른들의 현실적인 조언이지만 난 결코 납득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살아온 부모님의 조언은 누구보다 이상적으로 살아온 낭만파인 나에겐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번 내가 누굴 만나든 부모님의 간섭은 격해졌고 나는 그것을 뿌리치고자 수 없이 많은 논쟁을 이루었다. 날 위한 걱정인걸 알기에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서운한 감정은 있다) 그저 나의 방식대로 반항의 20대를 보내며 살아갈 뿐이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등에 뒤엎고 일으킨 프랑스혁명과도 같은 삶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사람을 바라볼 때 순수한 관조일 때만 사물의 영혼과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준다고 표현했다. 욕망을 품은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불순하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까다로운 사람일까? 안정적인 사람일까? 등 수많은 질문으로 바라보고 외모나 행색 그리고 태도에서 우리의 의도에 맞거나 맞지 않는 부분을 해석하려고만 한다(헤르만 헤세,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중 발췌). 누군가 당신을 욕망을 품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당신도 누군가에게 똑같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태도를 견제하기 위해 나는 어떠한 색안경 없이 사람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순수한 관조로 사람을 보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러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자라오며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그래서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 사람을 알아갈 때 많은 질문과 까다로운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난 너고 넌 나였다. 조화로운 만남이었다. 이별도 마찬가지였다. 만남이 순수했으니 이별 또한 지극히 감정적인 것에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어린 날의 미숙함으로 치부할 그런 어리석은 이별이었지 복잡한 이별은 아니었다. 아팠지만 상처가 흉터로 남지 않았다. 걱정 없이 시작한 연애인만큼 이별도 쉬웠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사랑이 떠나면 헤어지면 되는 연애. 사랑했던 순간만큼은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만남과 헤어짐 만큼은 평범했었다. 집착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연애만큼은 특별했다. 특별한 사람이었던 만큼 특별한 만남이었고 특별한 이별이었다. 지금도 내게 순수한 관조를 시험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위치가 아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누구보다 작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비좁은 마음에 거대한 내가 들어갈 수는 없었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상당한 실례임을 무릅쓰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그녀는 나와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안정적인 가정환경(물론 우리 가정도 매번 안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에서 평범하게 학창생활을 보내고 대학교를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와 다르게 그녀는 '사회적 약자'였다. 가정은 화목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일찍이 학업을 포기한 채 생업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안정을 취할 순 없었고 어렵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와중 큰 기대를 안고 개인 카페를 창업해 운영했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해 그마저도 오래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형편없는 현재의 모습을 비관했고 자신의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나와 그녀의 첫 만남에서 보여준 그녀의 태도였다.
30대의 첫 만남이 의례 그러하듯 기본적인 소개는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안정적인 나의 직장에 대해 감사하게도 경외의 답변을 해주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부끄러워하며 언급을 피했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억지로 더 캐묻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대화를 나눈 후에 현재 자신의 일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그래서 그녀는 처음 나의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미 그녀만의 색안경을 끼고 날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과 맞지 않을 거라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나에겐 그런 사실 따위는 중요치 않았기에 진심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그녀도 나의 순수한 관조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이해해 주었고 나의 밝은 모습을 좋아해 주어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녀의 부담감을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녀와 나는 공유할 수 있는 생각과 경험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현재의 나를 이끌어준 20대의 경험들은 그녀와 맞지 않았다. 가령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그녀에게 나의 대학생활과 관련된 경험들은 그녀에게 유쾌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반대로 그녀의 비관적인 이야기들은 내게 썩 유쾌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밝았고 그녀는 너무 어두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점점 이질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또한 그녀는 약간의 우울 증세를 겪고 있었기에 나의 앞에서 힘든 현실 때문에 우는 날이 많았다. 당시에 취업이 잘 안 되고 있던 상황이라 더더욱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 또한 점점 우울함에 잠식되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생략하지만 개인과 가정이 약간은 절망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였다. 그리하여 나는 당장 내일부터 삶이 막막한 지경에 이른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그건 전혀 내가 해결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었던 무게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녀를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바로 순수한 관조를 지키고 싶은 나의 신념을 관철시키고 싶어서였다. 내가 만약 그녀의 불우한 환경을 외면하면 나는 그저 그녀를 욕망을 품은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나의 순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녀와 평생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며 행복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천천히 미래를 관조하며 작은 것에서부터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것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해결하고자 급급했다. 나는 그녀를 달래며 천천히 시작해 보자고 격려했지만 그녀의 무기력하고 패배주의적인 듯한 모습은 이따금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 자신이 나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사실에 오히려 스스로 더 괴로워했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순 없기에 이해하려 노력했다. 내가 당연하다고 쉽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겐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지 않는가. 이해하려 노력한다 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국 나도 어느샌가 그녀의 상황을 맞춰주기 위해 현실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샌가 순수한 관조를 잃게 되었다. 그녀가 쉽게 일을 그만두는 것에도 이해해 주는 척 불만을 가졌다. 그녀가 내실을 다지며 천천히 취업을 준비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녀가 빨리 아무 곳에 취업을 해서 빨리 돈이나 벌었으면 싶었다. 결국 그녀의 선택지는 2교대 공장이었다. 그게 최선이구나 하고 가증스러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일을 시작하게 된 시점부터 우리의 관계는 어그러지게 되었다. 2교대 일정은 나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너무 좋은 방해요소였다. 나한테 소홀할 때마다 서운한 감정을 가졌고 삶이 피폐해진 그녀 역시 쉬고 싶은 걸 참으며 억지로 나와의 만남을 이어가는 점에서 불만이 생겨났다. 그건 정상적인 연인의 연애가 아니었다. 순수한 관조를 잃은 대가는 가혹했다. 현실에 치여 현실적인 선택을 이어가다 보니 결국 우리의 관계는 남아나질 않았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믿고 버텨서 그녀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왔어야 했으나 결국 나는 현실에 또 한 번 넘어지게 되었다.
결국 그녀가 먼저 이별을 얘기했다. 나를 사랑하지만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는 것이 스스로가 더 고통이라고 말했다. 내가 점점 더 빛을 잃어가고 현실에 부딪혀 순수한 관조를 잃어가는 나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순수한 관조는 잃었을지언정 나의 사랑에 대한 신념은 지키고 싶었다. 서로가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는데도 이별을 선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사랑하면 이러한 어려움도 언젠가 이겨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의 낭만적인 사랑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이별을 유보하며 관계를 지속해 나갔다. 잡초 같은 사랑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사랑에 대해서도 순수한 관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한번 끊어질 뻔한 사랑을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 사랑에 대해 집착적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 이유였다. 그녀와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섰다. 그녀가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라며 그녀의 모든 상황 속에서 내가 1순위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상황과 행동을 통제하려 했었다. 그녀를 예전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나의 틀에 끼워 맞추려 노력했었다. 욕망을 품은 시선으로 그녀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아니었다. 나처럼 행동하길 바라왔지만 그러지 못한 모습을 볼 때마다 서운한 나의 감정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더욱 자책하며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만 커져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고심 끝에 한번 더 이별을 고했다. 마지막에 가서야 내가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고 나 역시 망가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끝에 순수한 관조를 지키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닌 오히려 그녀였다.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했기에 이 관계에 대해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이별 또한 사랑의 한 과정임을, 잘 포장된 도로 위 들꽃 같은 이별을 준비하는 것도 그녀 나름의 사랑의 방식이자 표현이었다. 순수한 관조를 지키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그녀는 내게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쉽지만 그녀는 많은 부분에서 나와 함께할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그녀에게 나는 아직 이른 만남이었다. 때가 어긋났지만 우리는 마지막이 돼서야 서로를 온전히 인정했다. 우리는 결국 서로 결이 맞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순수한 관조가 사랑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수한 관조는 이별에도 둘 수 있는 것. 만약 순수한 관조를 통해 사랑만 쳐다본다면 욕망으로 변질되어 집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 이별을 택할 수도 있음을 어둠에 잠식되어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보다 더 깊은 슬픔을 느끼던 사람이 있었기에 깨달은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마지막까지도 부모님은 내게 많은 걱정을 해주었다. 사실 성급하게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씀드렸을 때부터 당연히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말한 내게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의미는 내가 경계하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같은 결의 파장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러한 파장은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을 알기 전까지 겉으론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 덕분에 사람을 보는 기준, 즉 순수한 관조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욕망을 품지 않은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되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수용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물론 지금의 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아무런 색안경 없이 사람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의 몸 안에는 누구나 이성세포가 있으며 이성세포는 나를 지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현실을 외면하기만 하는 이상의 집착을 버리고서 현실을 수용하되 현실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을 경계하는 현실적 낭만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만일 같은 순간, 또 똑같은 힘든 사랑이 찾아온다면 과연 난 잘 포장된 도로 위 들꽃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을 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잡초가 무성한 오래되고 낡은 정원과 같은 사랑과 이별을 택할까?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러나 확실한 건 사랑할 때도 이별할 때도 순수한 관조로 바라본다면 그 어떤 만남과 이별보다도 아름답고 낭만적일 것이다.
들꽃과 같은 이별을 함께해 준 지나간 인연들과 잡초와 같은 이별일 뻔했지만 내게 아름다운 이별의 기회를 준 그녀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남기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