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우리 동네에는 수봉산이라는 낮은 산이 있다. 수봉산은 야간에도 산책과 등산하기 좋게끔 반짝이고 아름다운 야경을 오랫동안 틀어 놓기에 지역 주민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운동 스폿이기도 하다. 나 역시 퇴근하고 산책과 러닝을 하러 수봉산에 오르곤 한다. 그런데 수봉산은 낮은 산치 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아주 무시무시한 야생동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산에 야생동물이 있는 정도로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할 수 있지만 너무나 치명적이게 귀엽고 무시무시한 너구리도 있고... 특히, 고양이들이 정말 많다! 뚱냥이들의 치명적인 뒤태를 보고 있으면 심장에 금방 무리가 가기 때문에 하던 운동도 멈추고 고양이를 마구마구 만져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이렇게 무시무시한 동물이 다 있다니...
아무튼 수봉산은 다른 산들에 비해 정말 고도가 낮고 주택가와 정말 근접해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이 풍부한(사람들이 많이 나눠주기도 한다) 이곳은 고양이들에겐 낙원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뚱냥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다른 고양이들과 결이 다른 뚱뚱함을 자랑하는 이 글의 주인공인 한 고양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체셔'라고 불리는(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체셔가 맞다) 이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닌 돌상에 가깝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벤치에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었다. 마치 골똘히 사색을 하는 철학가이자 선비와도 같은 그런 부동의 자세를 취하며 혼자만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애교도 떨고 만져주면 좋아하기도 하는데 체셔는 내가 옆에 있든 만져주든 반응조차 없었다. 처음엔 너무 안 움직이길래 어디 아픈가 싶었는데 태평하게 곧장 하품은 잘한다. 참 별난 고양이이다.
체셔 고양이처럼 가만히 앉아 무심하고 뚱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이상하고 엉뚱한 고양이를 매일 만나러 갔다. 묘한 호기심을 느낀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매혹하는 마법에 걸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난 체셔가 좋았다. 감사하게도 체셔 역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매일 옆에 있어주는데 체셔도 나랑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체셔도 나에게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매일 찾아가 체셔를 귀여워해 주었다. 그러나 언제나 항상 그렇듯 묵묵부답. 그래도 괜찮았다.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그리고 체셔도 말은 없었지만 날 좋아할 테니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내가 실연의 아픔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댈 곳 없던 나는 나의 얘기를 유일하게 들어주던 체셔의 옆으로 가 체셔와 함께 적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왠지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던 체셔에게 서운하기만 했었다. 왜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니? 날 위로해 주면 안 되겠니?
그런 마음이 들자 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체셔의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분명 고양이 울음소리는 없었지만 마법의 고양이인 체셔는 내게 똑똑히 얘기해 주었다. '여긴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
체셔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나는 그저 서운한 감정만을 가진 채 자리에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의 맘을 달래 줄 다른 고양이를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하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들도 각자 비를 피하기 위해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사라졌다. 결국 다시 홀로 남겨진 나는 벤치에 홀로 있을 체셔가 그리웠다. '체셔는 지붕이 비를 막아주고 있으니 잘 있겠지?'. 체셔가 걱정되어 다시 체셔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깨달았다. 체셔가 내게 건넨 말의 의미를.
체셔의 옆자리에는 다른 고양이가 떡하니 붙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평소에 반응조차 없던 체셔도 옆에 고양이와 함께 같이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옆자리를 떠났지만 후회와 그리움에 사무쳐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 자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정확히는 고양이의 옆자리는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말이다. 나는 결국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었으니까.
첫사랑과 후회스러운 이별을 했었다. 사랑보다는 나를 우선시했었고 그래서 그녀를 소홀하게 생각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고자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그녀의 옆자리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더 이상 나의 자리는 없었다. 그때는 나의 자리를 뺏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뺏긴 것이 아니라 자리의 주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 자리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고양이의 옆자리는 내가 아닌 고양이만의 자리여야 했던 것처럼. 임자가 따로 있단 말이 이런 의미였을까?
나만의 옆자리도 운명처럼 주인이 정해져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낭만은 운명이 아닌 선택임을 믿게 된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 따위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떠나간 자리의 주인은 더 이상 떠나간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체셔도 다른 고양이가 찾아올 수 있도록 나를 밀어내고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두었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사랑을 위해 옆자리를 비워두고 싶다. 혹시 어쩌면 되돌아올 사랑을 위해서라도 옆자리를 남겨둘까 싶었지만 그러지 않으려 한다. 이별에도 낭만이 있다면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운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