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서점에 방문하여 이리저리 책을 구경하다가 드디어 맘에 든 책을 발견하면 이윽고 나는 그 책을 바로 판매대에 가져가지 않고 우리 회사 전자도서관 어플에 접속한다. 혹시나 내가 고른 책이 전자도서관에 이미 입고되어 있을까 봐 확인하기 위해서다. 만일 전자도서관에 입고된 책이면 책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대여해서 읽기 때문이다. 책을 모으는 것에 큰 흥미가 없던 내게는 상당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이것이 내가 서점에 방문했을 때 나의 루틴이다.
비 오는 날 여름이었다. 퇴근 후, 지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여느 때처럼 서점에 방문하여 이리저리 책을 구경하다 맘에 든 책을 고른 후 전자도서관 어플에 접속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은 자동 로그인이 풀려있었다. 보안 때문에 자동 로그인이 풀리는 경우가 간혹 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내가 알던 비밀번호로 로그인을 시도했다. 그러나 로그인 실패...
평소에는 웬만하면 자주 쓰던 비밀번호 패턴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몇 번 시도하다 보면 로그인에 성공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정말 그날만큼은 어떤 패턴을 다 가져와서 입력하더라도 계속해서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숫자와 영문자 배열을 바꿔가며 이리저리 오만가지의 비밀번호를 다 입력해 보아도 실패했다. 비밀번호 찾기는 할 수 없었다. 회사 계정이기 때문에 개인 아이디처럼 비밀번호를 찾을 수 없었고 회사 보안팀에 문의해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퇴근 이후라 당연히 당장 비밀번호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서점에 우두커니 서서 한 시간을 넘는 시간 동안 비밀번호와 씨름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책을 구매했다.
나는 원래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 몇 번 해보고 안되면 금방 포기한다. 그날은 특히나 심신이 지쳐있었던 날이라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유독 비밀번호에 집착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어떤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었다는 사실을. 자동 로그인의 편안함과 익숙함에 절여져 소중한 비밀번호를 잊고 지냈던 나의 안일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다. 소중한걸 소중하지 않게 대한 대가는 가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또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닌지.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사랑은 언제나 내 옆에 항상 있어주며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열 때도 불편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 없이 간편하게 자동 로그인이 된 것처럼 항상 열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 닫혀 있는 그녀의 마음을 열고자 했을 때는 자동 로그인은 풀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비밀번호를 잊은 뒤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해 여름은 그렇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비 오는 날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자동 로그인이 풀려있던 그날이 계속해서 떠오를 것이다. 내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덕분에 구매한 책은 작가님에게 소중한 수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 홀로 집으로 돌아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