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마니 흐른거 가터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그 옛날 냇가로 빨래하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갔던 기억이다.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빨래에 비누칠을 하고, 문지르고, 그다음 빨래 방망이로 두드리기를 반복하셨다. 하릴없는 나는 빨래하시는 어머니 주위에서, 며칠 전 사주신 검정 고무신을 흐르는 물 위에 띄워 뱃놀이를 하였다. 고무신은 내 발보다 커서 평소에, 평지에서 신고 다니다 보면 벗겨지기 일쑤여서 고무신을 신고 다닌다기보다 끌고 다니다 시 피했다. 당시 물자가 부족했던 터라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고무신을 사줄 수 없어 내년 여름에도 신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크기의 검정 고무신을 사 주셨던 같다
그 고무신을 물 위에 띄워 놀다가, 고무신 한 짝이 순간적으로 흐르는 냇물에 떠내려 갔다. 내가 허겁지겁하자 어머니께서 돌아보시고 놀란 모습으로 떠내려 가는 검정고무신을 잡으려 하셨다.
그러나 유속이 제법 빨라 허리에 동생을 업고 힘겹게 빨래를 하시던 어머니는 신발을 잡으려 했지만 이내 멀리 떠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검정고무신 찾는 것을 포기하신 어머니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나를 야단치셨다. 내 기억으로는 어머니에게 야단맞은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검정 고무신이 잘 떠내려 가기를 속으로 빌었다. 가다가 바위에 부딪치고 돌멩이에 걸려 가라앉지 말고 멀리 떠내려 가기를 바랐다. 나는 그 후 어머니가 빨래를 가시는 날이 아니어도 어머니 몰래 냇가로 나가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며 내 검정고무신의 항해를 궁금해했다. 집 앞을 흐르는 냇물이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내가 커서 냇가를 따라 끝까지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검정 고무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내 검정 고무신을 만날 수 있기를 꿈꾸 곤했다.
그 후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아라비아 숫자를 가르치셨다.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며 연을 날리기에 정신이 없던 나를 강제로 붙잡아 방안에 앉혀 놓고 아라비아숫자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나는 숫자 3에서 진도를 멈추었고, 속상한 어머니께서는 자포자기하여 더 이상 나를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다. 나는 덕분에 어머니 통제범위를 벗어나 연날리기에 다시 열중할 수 있었다. 연 날리던 그 겨울, 당시 몸으로 느꼈던 청량한 찬바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을 날리기 위해 앞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만을 바라보며 달리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추수 끝난 텅 빈 논밭 위를 달릴 때 바짓가랑이로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으나 한편으로 상쾌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식날 학생들이 모두 모인 운동장에서 고모를 만났는데 평소에 보던 허름한 옷차림이 아니라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무언가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 숫기가 없던 나는 고모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입학식이 끝나고 배정된 교실로 들어간 후에 우리들 앞에선 고모가 우리의 담임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집성촌 동네마을에서 거의 매일 보다 시피한 고모였지만 집에서와 달리 학교에서는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존재임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고모를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고모가 진행하는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이미 선행 학습을 통하여 나보다 아는 게 많다는 사실에 나는 퍽이나 주눅이 들었다.
나도 고모 앞에서 당당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지난겨울, 내가 열성이었던 연날기만큼 수업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아라비아 숫자뿐 아니라 우리말도 금방 깨우쳤다.
그렇게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가족을 떠나 대도시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낯선 하숙집에서 숙식을 하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지만 누구의 보살핌도 없는 하숙집에서 밤에는 무서워 방안의 전등을 켜고 잠을 자다가 하숙집 주인으로부터 꾸중도 들었다. 하숙을 하면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서울로 상경하였다.
검정 고무신을 떠내려 보낸 그 시절로부터 부모. 동생을 떠나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직장에서는 책임감 있는 전문가의 모습, 친구들 앞에서는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 가족에게는 능력 있고 다정한 부모, 부모에게는 효성스러운 자식, 아내에게는 성실한 남편으로서의 역할 등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며 지금 이 자리까지 퍽이나 먼 길을 왔다. 그 여정을 뒤돌아 보니 무엇하나 잘한 게 없다. 그토록 다짐하며 노력했는데 이리됐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나름 잘하려 했지만 실패한 부분이 너무 많다. 가정에 충실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친구와 의리를 지키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듯했지만 내 의도와 다른 평가를 받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잘못된 길을 따라온 듯하다. 잘하려 열심히 애쓴 만큼, 딱 그만큼 괘도를 벗어난 길을 왔구나.
차라리 잘하려 애쓰지 말걸....
냇가에서 검정고무신을 냇물에 떠내려 보낸 이후
이리저리
애달프고
서럽고
두렵고
가끔은 신났던
길목을 지나 지금 이곳까지 왔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도 가고,
낯선 길을 쭈볏대며 기웃거리기도 하고
아는 길을 자신 있게 활보도 했다.
이제는 지나온 길이 너무 끝없어 어디를 지나왔는지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동행하던 길동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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