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도 혼자 하산해라”

어찌 하산하여 나만 살아남냐

by 여여
필리핀 사방비치에서..

(K2영화를 보고)

성취욕이 강한 변호사 Talyor와 범생이 절친 대학교수 Harold가 K2등반에 도전한다. 독신인 테일러와는 달리 가족이 있는 헤롤드의 아내는 "K2등반대의 절반은 죽는다"며 산과 자신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말린다. K2정상 정복에 혈안이 된 두 사람이 정상을 앞둔 상황에서 선발대 4명 중 2명만 올라야 한다는 본부의 지시를 받는다. 이때 선발대 리더에게 테일러는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를 보고 해롤드는 테일러를 이기적이라 비난하며 다툰다. 해럴드는 테일러에게 "너는 어떤 손해도 보지 않을 때에 만 나의 친구 노릇을 한다 (You're only my friend when it doesn't cost you anything.)"며 화를 낸다.

해롤드는 테일러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친구인 자신(해롤드)을 이용하고, 손해를 볼 상황에서는 관계를 회피한다고 비난하며 테일러의 이기적인 면모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서로 선발대로 정상에 오르려 다투지만 리더는 둘 다 선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데리고 정상 정복에 나서자, 둘은 허탈에 빠져 캠프를 지킨다. 그러나 정상정복에 나섰던 두명중 리더는 실종되고 1명은 큰 부상을 입고 캠프로 돌아오자마자 숨을 거두고 만다. 테일러와 해럴드는 리더를 수색한다는 명분하에 본부의 허락을 얻어 자신들이 꿈에 그리던 정상 도전에 나선다. 드디어 둘은 정상 정복에 성공하여 인증 샷을 찍으며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갑자기 악화되는 날씨 탓에 당장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산 중 해럴드는 큰 부상을 입고 설상가상으로 장비를 분실한 데다 통신마저 두절된다.


오도 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두 사람.

“너라도 혼자 하산하라”는 해롤드와

“너를 두고 어찌 하산하여 나만 살아가냐”는 테일러.

테일러는 자신이 항상 이기적으로 살아왔지만 이 순간만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고 당시에 장비를 분실한 그들에겐 로프조차 없어 혼자 하산하기에도 장비가 부족하다. 결국 테일러는 고심 끝에 해롤드를 남겨두고 혼자 하산하는데, 하산길에 리더의 시신을 발견한다. 죽은 리더의 시신은 생존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한다. 테일러는 리더의 시신에 남겨진 로프와 약품을 챙겨 해롤드를 구하러, 죽음을 무릅쓰고 내려왔던 그 길을 다시 되돌아 올라간다. 천신만고 끝에 해롤드를 다시 찾은 테일러는 죽기 직전의 해롤드를 리더의 시신에서 찾은 약품으로 치료하고 로프에 묶어 악천후를 뚫고 힘겨운 하산을 시작한다.

세속적으로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변호사와 대학교수가 왜 그토록 K2정복에 목숨을 걸고 갈망했을까. 직업 산악인이 아니어서 K2정복이 그들의 생계와 무관한데 왜 목숨을 걸었을까. 취미 생활을 목숨 걸고 할까. 그건 취미 생활의 일반적 정의에서 벗어나는 개념이다.

하지만 내가 패러글라이딩. 겨울 비박.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것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사한 느낌일 듯하다. 패러글라이딩. 겨울 비박. 스쿠버다이빙과 같은 스포츠는 K2등반대처럼 절반이 죽지는 않지만 심심찮게 사고가 나는 극한스포츠(extreme sports)의 하나이다. 나도 문득 K2 정상에 올라 서 보고 싶다. 생사의 고비를 넘고 넘어 마침내 살아남는 그 여정을 해보고 싶다. 그들이 K2 정상에 목숨을 건 이유를 알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어도 가끔은 목숨 걸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는 것이다.


- 절친이었지만 양보하지 않고 서로 이기적으로 자신이 먼저 정상에 오르려 다투던 두 사람

- 그러나 정작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정을 지키는 두 친구


내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빤히 알면서 자신을 희생하며 친구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이 가면 둘 다 죽는 게 확실한데도 친구를 버리지 못하고 같이 하는 그들의 우정이 아름답다. 나에게 이 영화의 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친구로 남아준 테일러와 해럴드의 우정이 아름다운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극한의 상황에서 두 사람이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에게 혹시 테일러 같은 친구가 있는지 뒤돌아 본다.

그보다 먼저 내가 누군가에게 테일러 같은 친구일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인간의 이기심은 우리가 물려받은 DNA에 각인된 진화의 핵심동력이지만 인간은 항상 이기적이지는 않다. 인간은 목에 칼이 들어오면 피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피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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