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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Jun 16. 2019

모든 순간들이 딱 맞아 떨어지는, 어느 완벽한 날

랩걸

1.

식물은 장난을 치지 않는다.


사람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아이들의 삶은 장난 그 자체이다. 동물들도 장난을 좋아한다. 게으르기 그지없는 우리 고양이조차 쥐돌이 장난감을 던져주면 삼십 초 정도는 열성껏 가지고 논다. 장난이란 의미 없는 행동이다 그런데 식물은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뿌리를 뻗고 줄기를 올리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는 그 모든 행동에는 의미와 의도가 있다. 식물의 삶에 장난이란 없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치열하고 진지한 삶이라는 뜻이다.


호프 자런이 <랩걸>에서 보여준 그녀의 삶은 식물의 삶과 같다. 한 줌 빛을 얻기 위해 고집스럽게 줄기를 뻗어나가는 식물처럼 그녀의 삶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뿌리를 내리고 악착같이 줄기를 뻗는다. 그녀의 목표는 자신만의 실험실을 갖는 것. 키도 닿지 않는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인형 대신 삼각자를 가지고 놀던 때부터 언젠가는 완벽한 자신만의 실험실을 가지리라는 확신을 놓지 않는다. 씨앗이 싹을 틔워 나무로 성장할 가능성은 5%도 안 된다고 한다. 여성 과학자, 그것도 크게 돈 될 것 없는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삶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5%에 들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닥치는 대로 일하고 퍼졌다가 또 일한다. ‘워라밸’과 ‘저녁 후의 삶’이 요즘의 키워드이건만 그녀의 삶에는 일과 삶의 밸런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이 곧 삶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런 일벌레의 삶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이고 열렬히 부럽기까지 하다. 그건 순수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따분한 반복 작업을 계속해야 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물질을 다루어야 하고, 성공보다는 주로 실패로 끝나는 실험의 일상들을 그녀는 숨 쉬듯이 사랑한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2.

식물도 사랑을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선택이라는 단어와 아주 가까이에 놓여 있다. 문득 똑같아 보이던 것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에 마음이 기울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고 사랑한다. 동물들의 선택은 눈에 잘 보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사자는 좀 더 갈기가 큰 것을 선택하여 사랑하고, 공작은 깃털이 화려한 것을 선택하여 사랑한다. 인간의 선택 조건은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만큼이나 좀 더 복잡하지만 여하튼 일련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무엇인가를, 또 누군가를 선택하고 사랑한다. 반면 식물들의 선택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순간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떤 온도와 습도와 일조량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식물들은 사랑에 빠진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전한다.


호프 자런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아니, 그런 대상이 찾아온다. 야외조사를 나간 곳에서 다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는 빌을 본 순간, 그녀는 그를 선택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생의 동료가 된다. 누군가 쓰다 버린 애틀란타의 낡은 지하 실험실에서부터 녹음이 내다보이는 하와이의 실험실에 이르기까지. 호프가 조울증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빌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호프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도 두 사람은 때로는 툴툴거리고 때로는 낄낄거리며 함께 탄소 분석을 하고, 시험관 라벨을 붙이고, 고장 난 기계를 고치고, 씨앗을 배양한다. 그들의 만남은 동물들이 그러하듯 대상을 선택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맺어나가는 관계는 마치 식물들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늘 그 자리에 서서 순간들을 선택해나갈 뿐이다.

    

“빌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다. 나를 선택하면 함께 따라오는 종합 선물세트의 일부,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형제이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라벨을 원한다. 고구마 문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거기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내가 ‘우리’로 작동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사랑의 장난을 나는 좋아한다.


사랑에게 나는 늘 손쉬운 장난감이다. 삼월에는 산수유와, 사월에는 벚꽃과, 오월에는 이팝나무꽃과 사랑에 빠진다. 비가 쏟아질 때의 흙냄새를 사랑하고, 비가 그친 후의 밤공기를 사랑한다. 내가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 마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단골 카페 알바의 친절을 사랑하고, 사탕 준다는 말보다 사실은 칭찬 받을 생각에 신이 나서 심부름하러 뛰어가는 아이들의 가벼운 뜀박질을 사랑하고, 내 글을 읽으며 좋은 문장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따스한 말투를 사랑한다. 그 모든 사랑이 일 초 후면 바람에 흩날릴 꽃향기처럼 그냥 순간의 장난일 걸 알면서도.


일 년 전 나는 문샤인과 사랑에 빠졌다. 산세베리아의 한 종류인 이 아이는 이름처럼 은빛이 감도는 푸른빛 잎을 지니고 있는 아주 예쁜 식물이다. 애정을 가지게 된 것들에게 으레 그러하듯 애칭도 붙여 주었다. 문돌이, 넌 이제 문돌이야.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내 자취방이 식물에게 무척이나 척박한 환경임을 깨닫게 되었다. 좁은 창문으로는 아침햇살이 잠깐 들뿐 대개 하루 종일 어두운 상태인 데다가 그 아침햇살마저도 블라인드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통풍이 잘 되어야 한다는데 미세먼지에 극도로 예민한 방의 주인 때문에 먼지가 많은 주간이면 며칠이고 환기마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아주 조금씩 자라났다. 슬슬 분갈이가 필요할 듯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끈하던 잎의 끝 부분이 파마라도 한 듯 뒤틀리는 현상마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물이 부족해서인지 화분이 작아서인지 영양이 부족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이 녀석에게는 더 잘 돌봐줄 주인이 필요해.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포스트잇에 ‘키우실 분 가져가세요(하트)’라고 최대한 예쁘게 써서 화분에 붙인 후 분리수거하러 갈 때 함께 내놓기 위해 현관 한 구석에 두었다. 그리고는 <랩걸>을 펼쳐 뒷부분을 마저 읽었다. 책은 마지막 한 문장까지 좋았다. 나는 여운에 사로잡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현관 쪽을 보았다. 맙소사. 그 순간 나는 화분에, 아니 문돌이에게 붙였던 포스트잇을 다시 떼어 안고 올 수밖에 없었다.


<랩걸>은 식물과 과학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낭만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식물에 대한 문장들은 종종 난해하며, 과학에 대한 문장들은 다소 날이 서 있고, 삶에 대한 문장들은 대개 힘겨우므로. 그럼에도 식물과 과학과 삶 모두에 배어 있는 순도 높은 애정은 따스하고 아름답다. 버리려고 했던 화분을 다시 키우기로 결심하게 될 만큼. 햇빛과 온도와 습도가 완벽한 어느 초여름 날에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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