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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Apr 20. 2019

자격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는 날

인간실격 그리고 사랑의 생애

1.

곤충의 자격이란 뭘까.

과학시간은 나에게 곤충의 자격이란 머리, 가슴, 배와 세 쌍의 다리를 갖춘 것임을 알려주었다. 거미에게는 곤충의 자격이 없다. 가슴이 없고, 다리가 한 쌍 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미가 슬퍼할지 어떨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런 사실 앞에서 나는 공연히 서글퍼질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격’이라는 틀 안에 집어넣는 일, 그것이 자격이라는 단어의 일이다.


2.

이제 자격의 대상을 곤충에서 인간으로 바꿔 본다. 인간의 자격이란 뭘까.

감히 ‘인간의 자격’이라는 제목을 내건 용기 있는 작품은 아직 읽어본 적 없다. 하지만 그 반대를 이야기한 작품은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다. 작가는 세 장의 사진 속 사내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서문을 연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눈을 뜨고 사진을 다시 봐도 생각나지 않는 얼굴이다. 그저 무턱대고 역겹고 짜증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을 돌리고 싶어진다.”


설명할 수 없이 혐오스럽고 불투명한 인상의 사내. 이 사내는 이렇게 이야기의 시작부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서문으로 하여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다.

사내의 이름은 요조. 그는 아주 어린아이일 때부터 타인에 대한 이해나 믿음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진짜 비극은 그런 자신을 감추고 어떻게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자격에 대해 물음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자격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안간힘, 그 안간힘 속에는 철저하여 오히려 안쓰러운 자기검열이 있다. 그것은 누구의 시선보다도 더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만큼 한 치의 두둔도 없다. 그는 끝내 스스로를 판단하고 무력화하는 집요한 시선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용서하는 대신 망가뜨리는 길을 택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하느님같이’라는 과도한 수식이 오히려 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하느님께 물어 본다. 요조의 영혼은 어디로 갔나요? 아마 하느님이 허락했다 해도 요조는 천국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지옥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곳에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격이 텐데 아마 그는 그 어떤 자격 속에도 자신을 집어넣지 못했을 테니까. 요조의 영혼은 분명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이 세상 차갑고 그늘진 곳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자격을 갖춘 인간들이 따스한 마음으로 뿌듯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그림자에 실격된 존재가 필요한 법이니까.


3.

스스로 인간으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나 또한 많은 순간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뻔뻔하게 삶을 잘 영위해 나간다. 심지어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자위할 때도 많다. 그러나 이 다음 단어와 자격이라는 단어를 결부시키면 문득 초라해지고 만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이승우의 작품 <사랑의 생애>에서 한 남자는 한 여자의 귓바퀴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느닷없이. 그런데 이 여자는 사실 오래 전에 그를 좋아했던 여자이다. 남자는 그 때 여자의 고백을 이렇게 거절했었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라고.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소설 속 남자처럼 원치 않는 마음을 받거나 반대로 준 마음을 돌려받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사랑의 자격을 말한다. 나는 사랑을 할, 혹은 받을 자격이 없다고.

대체 어떤 ‘격’ 속에 내 마음을 맞추어 넣어야 나는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격이란 말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위해서는, 어쩐지 나 자신을 어떤 ‘격’ 안에도 기꺼이 끼워 맞출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때 나는 요조가 된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때로는 익살꾼으로, 때로는 난봉꾼으로 나를 가장한다.


<사랑의 생애>에서 여자는 사랑을 자격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남자의 말에 분개한다. 사랑의 자격에 대한 물음에는 ‘사랑에는 자격이 없다’는 평범한 대답이 가장 정답에 근접해 있는 지도 모른다. 이 불가해한 감정에 빠지는 데는 아무런 자격이 없다. 작가 이승우는 애초에 우리는 ‘사랑의 숙주’일뿐이며,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 사랑을 시작한다거나 끝낸다거나 혹은 합당한 자격을 갖춘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의 자격이 궁금하다. 곤충의 자격처럼 누군가 명시해주었으면 싶다.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그 자격에 들지 못할까봐 금세 풀이 죽어 버린다. 그 때 느낄 슬픔은 거미의 자격 앞에서 느낄 슬픔과는 비견할 바가 못 될 것이다.


결국 자격이라는 단어 앞에 슬퍼지는 마음은 그 자격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비례한다. 


인간의 자격 속에, 사랑의 자격 속에

나는 오늘도 간절히 들고 싶다.


그래서 “너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라는 다정한 말을 가슴에 꼭꼭 새기며, 바람에 흔들리는 거미줄 같은 생을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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