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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Oct 06. 2019

흐렸다가 맑았다가, 구름의 두께를 헤아리는 날

새의 선물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데이모스의 법칙을 들어보셨는지. 우리는 하루 5~6만 가지 생각을 하는데 그 중 90퍼센트는 쓸데없는 걱정이고 그 걱정 중 또 90퍼센트는 어제도 했던 걱정이란다. 내가 알기로 머릿속을 하드웨어적 접근이 아닌 소프트웨어적 접근으로까지 들여다보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는데 이 구체적이고도 압도적인 숫자들은 대체 어떻게 계산되어 나온 건지 당체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사람의 뇌는 끝없는 고민들을 생산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 이 법칙의 요점일 것이다.


나의 뇌도 그 누구의 뇌에 못지않게 고민을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적합하게 발달해 있다. 나는 온갖 것을 자주 골몰히 고민한다. 아침에 막 일어나 아직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오늘 아침에는 새 수건을 꺼내 쓸지 어제 저녁에 잠깐 쓴 수건을 다시 쓸지를 고민한다. 아마 그 고민을 끝내고 나면 사용한 수건을 바로 빨래통에 던져 넣을지 수건걸이에 말려놓았다가 던져 넣을지를 고민하겠지.


그래도 이런 고민은 삶의 안녕을 결정적으로 위협하지는 않는다. 어떤 고민들이 삶의 안녕에 결정적 시름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고민에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수건에는 부여하지 않았던 어떤 의미, 그 의미가 마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을수록 고민은 여름날 잎처럼 무성해질 것이고 그 잎들을 모조리 휩쓸어갈 태풍처럼 강렬해질 것이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삶은 농담이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 이 구절을 발견한 후 나는 자주 이 구절을 마음의 태풍 속에 연처럼 띄워 올렸다. 대개는 연줄이 끊어져 나갔으나 그럼에도 끊어져 나간 연이 어지러운 하늘을 맴도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보면 서서히 마음의 날씨가 가라앉기도 했다. 어떻게 읽으면 유치할 정도로 냉소적인 태도의 문장이지만 삶이 농담이라고 생각하면, 4만5천에서 5만4천 가지에 이르는 고민들이 분명히 시들시들해졌다. 정확히는 게을러졌다. 고민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마음이 농담이나 주고받는 기분으로 느긋하고 게을러지니 고민들도 휴일 오후 소파에 널브러져 주워 먹는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이 되고 말 수밖에.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감정, 예컨대 사랑 같은 것에서 뜻을 캐내려고 애쓰는 대신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듯 태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 <새의 선물>의 화자인 진희는 어린 나이에 그러한 삶의 태도를 습득한다. 그래서 이 어린 아이의 주변에 피고 지는 수많은 어른들의 사연과 사랑의 형태는 아이의 마음의 풍경에 잔비는 내릴지라도 태풍은 몰고 오지 않는 다. 아이는 계절보다 앞서 익은 과실 같은 눈으로 그저 들여다 볼뿐이다. 외할머니의 손에서 크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찾아온 아버지를 보게 된 날, 진희의 마음에는 처음으로 눈과 바람이 쏟아지지만 이 또한 진희는 삶의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소설의 제목은 <새의 선물>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동물은 ‘쥐’다. 더럽고 번들거리는 눈을 가진 쥐는 진희에게 혐오감을 주지만, 진희는 그 혐오스런 대상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대신 끝까지 지켜보며 징그러움을 극복하기를 택한다. 수많은 삶의 고민들 속에서 진희를 지탱해 주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쥐의 꼬리에 대한 응시이다. 그 뻔뻔스럽고도 자연스러운 꼬리의 움직임은 생의 의지이며, 쥐는 어찌 보면 신의 무심함과 우연으로 점철된 삶에 대한 은유이다. 생의 진실이란 그저 쥐의 꼬리 같은 것. 비참할 것도 대단한 것도 없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새의 선물>을 읽고서는 최승자 시인의 시에 나오는 이 구절이 떠올랐다. 삐딱한 방관의 자세가 꽤나 닮아 있다. 농담이고 루머인 삶에는 애쓸 것이 없다. 애써 붙잡을 의미도 없지만 애써 부정해야 할 의미도 없다. 데이모스의 법칙 따위는 루머의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그 불성실한 태도는 삶에 집착하지 않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에 성실하게 만든다. 진희가 삶의 변화를 고민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서듯이, 수건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기보다는 얼굴에 일단 물을 끼얹듯이.


이래저래 애써봐도 나는 고민이 많은 사람이다. 농담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농담에 깔깔 웃음을 터트리는 일에조차 그닥 재주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내 마음에는 늘 제멋대로 엉킨 고민의 나무들이 무성하겠지만 굳이 뿌리를 들춰보지는 않겠다. 내 마음이라고, 내 삶이라고 내가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어차피 아니니까. 엉킨 것을 푸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엉킨 것을 엉킨 대로 바라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나도 쥐의 꼬리를 바라보는 아이처럼 중얼거리는 날이 오겠지. 별로 다정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뭐, 다 농담이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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