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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Jan 05. 2020

반달의 나머지 얼굴을 헤아려보는 날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영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는 계속해서 이 대사가 나온다.


“너는 어느 차원에서 왔니?”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던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다중우주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다중우주론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세 문장쯤 읽다가 머릿속이 다중우주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난해함에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게 됨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많은 대중영화나 소설에서 이 이론을 주요 설정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이 이론이 과학적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워도 심리적으로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 모두는 ‘만약에’로 시작하는 또 다른 세계와 동거하며 살고 있다. 90년대 추억의 프로그램 <TV인생극장>에서 이휘재 씨가 “그래, 결심했어!”하고 외치는 순간 그의 삶의 두 갈래로 갈라지듯이 나의 현재는 사실 과거의 수많은 ‘만약에’의 상황에서 갈라진 갈림길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또 다른 우주를 상상하듯이 자구 그 다른 갈림길을 상상하며 살아간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매혹적인 이야기에 어마어마하게 압도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감상평도 남길 수 없었다. 누군가 “그 책 어때요?”라고 물으면 “아, 엄청나요.”라는 대답밖에는 해주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지금에야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뒤늦게야 이 책에서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를 건져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란 거울 속의 거울을 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다. 그는 거울 속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자신이라 인식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또 다른 분신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거울 속에 비친 남자의 모습이 거울 밖으로 걸어 나와 쌍둥이가 된다. 마치 철자의 순서만 뒤바뀐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처럼.


그렇다. 이 이야기의 두 주인공인 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물론 나의 매우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사실 한 사람이다. 그 때 국경을 넘었더라면 펼쳐졌을 삶이 클라우스이고, 국경을 넘지 않았더라면 펼쳐졌을 삶의 루카스이며, 어쩌면 두 삶 모두 실재하지 않는 ‘만약에’로 시작하는 상상 속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만약의 삶들이 실제로 또 다른 우주에서 펼쳐졌더라면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한 서사가 바로 이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연작소설로 되어 있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3부에 이르러 비춰진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삶은 둘 다 지극히 불행해 보인다. 결국에는 서로를 연결해준 상징적인 교통수단이었던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결말은 ‘만약에’로 시작되는 또 다른 삶의 종착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만약에 그 때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더 행복해졌을 것만 같지만 어떤 우주에도 완벽한 삶은 없다. ‘만약’이라는 달콤한 삶의 가정들에만 갇혀 있는 한 선로를 따라 도는 기차처럼 우리의 삶은 영원한 거짓말 속에 갇힐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위험한 동거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만약’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건 영원히 닿지 못할 다중우주일 뿐이다.




bgm.혁오_tom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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