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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Apr 19. 2020

햇살과 꽃잎이 마음에 흐드러지는 날

초록 지붕 집의 앤

흐드러진 봄의 풍경 속으로 마차를 탄 소녀가 지나간다. 호수의 반짝임과 꽃잎 하나하나마다 감탄사를 터트리며 빨간 머리를 바람에 흩날린다.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압도적인 묘사의 양에 질리기 쉬운데 <초록 지붕 집의 앤>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 압도적인 묘사에 있다.


길 양쪽으로 어느 괴짜 농부가 오래전에 심었다는 사과나무들이 빈틈없이 사오백 미터는 되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지들이 아치를 이룬 머리 위로는 눈꽃송이 같은 하얀 꽃들이 천장처럼 하늘을 뒤덮어 향기를 내뿜고, 아래로는 자줏빛 황혼이 세상을 물들였으며, 저 멀리로는 성당 복도 끝으로 보이는 커다란 장밋빛 창문처럼 저녁노을 진 하늘이 빛났다.


에이번리 마을의 봄이 마차의 속도에 따라 차례대로 펼쳐지면서 독자는 소녀와 함께 이 마을의 모든 풍경을, 그 무엇보다 그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초록 지붕 집을 사랑하게 된다.


소녀의 이름은 끝에 ‘e’를 붙인 앤.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바로 그 소녀이다. 어릴 때 들은 빨간 머리 앤의 주제가가 오래 마음에 남아 있듯이 앤을 떠올리면 처음 연상되는 이미지 역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속 앤이다. 볼록한 이마에 파란 눈, 볼에는 주근깨 서너 점이 박혀 있는 빨간 머리 앤.



다시 읽어 본 원작 속의 빨간 머리 앤은 그 애니메이션 속의 소녀처럼 여전히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다. 오늘도 살아 있어서 행복한 아침이라며 인사를 건넨 지 반나절도 안 되어 울면서 방으로 뛰어 들어와 장장 두 페이지에 걸친 눈물의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음 날이면 창문 너머 만개하기 시작한 꽃들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이 소녀에게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다. 사실 대학에 갈 나이가 되어서는 주근깨도 없어지고 풍성하던 곱슬머리는 적갈색으로 변하고 키는 더욱 커져 꽤 미인으로 성장한 것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마치 못난이 오리 같던 영혼이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하는 동화처럼.     



그러나 얼마 전 국내에 시즌3 방영을 마친 넷플릭스 드라마에서의 앤은 동화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힘들고 삭막한 정도로만 묘사되던 앤의 이전 입양 가정과 고아원에서의 삶은 학대의 연속이었고, 그런 삶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피수단이었던 그녀의 상상들은 지독하고 애처롭다. 학교에 간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원작과 달리 드라마 속에서 앤은 한 시즌이 끝나도록 아이들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다. 자신을 이해받기 위해 강박적으로 쏟아내는 말들은 웃음거리가 되고 난생 처음 친구를 만들기 위한 서툰 시도들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즌이 바뀌면서 소녀의 키는 점점 커지지만 여전히 주근깨는 가득하고 숱이 적은 머리는 타는 듯이 붉다. 내 눈에는 꽤 사랑스러웠지만 누가 봐도 아름다운 백조로 변모하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만들어낸 앤의 서사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지점이자 아쉬운 지점이었다. 드라마 속의 앤은 분명 원작이나 옛날 애니메이션 속의 앤만큼 사랑스럽지 않다. 그러나 좀 더 현실에 있을 법한 아이이며, 좀 더 간절한 아이다. 그러한 앤이 아주 천천히 마음에 자리 잡게 되는 서사가 나는 좋았다. 매슈와 마릴라가 앤이 사랑스러워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자주 힘겨워짐에도 불구하고 그 힘겨워지는 과정들을 사랑하게 되는 방식이 좋았다. 삶은 여전히 화해의 손길을 자주 내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이번리의 들판을 폴짝폴짝 뛰어가는 이 소녀의 모습을 보는 일이 행복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앤의 이야기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따스함이 한 조각 배어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앤은 여전히 초록 지붕의 앤이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는 결국에는 그 어떤 일이든 이겨냈다.


원작의 첫 권 제목이 <초록 지붕 집의 앤>이듯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주된 관계는 역시 초록 지붕 집에서의 관계이다. 관계를 맺는 방식을 요철에 비유한다면 앤은 볼록한 부분이고 매슈와 마릴라는 오목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한 표현 방식을 가진 이들. 남들처럼 평평하지 못하기는 매 한가지다. 하지만 서로의 평평하지 못한 부분이 맞물리면서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내가 앤의 이야기를 사랑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한 번도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내향적인 남매와 어른들에게 버림받기만 했던 아이가 만나 ‘가족’이라는 가장 어렵고도 내밀한 관계로 묶이는 과정은 어떤 형태로 원작을 변형한다 해도 변치 않는 감동을 준다. 드라마는 이 서사를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그려내며 앤뿐만이 아니라 마릴라와 매슈의 변화를 그려내는 과정 역시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 비현실적인 도약을 시도한다. 바로 길버트와의 관계이다. 이 드라마에 대한 몇몇 리뷰들을 읽어 보니 원작에는 없던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 차별, 계층 문제 등에 관한 서사들이 어색했다는 의견들이 꽤 있었다. 나 역시 일정 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서사들이 고아라는 편견과 맞서는 것을 넘어 좀 더 많은 사회적 편견에도 맞서게 되는 앤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는 점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몇몇 에피소드들은 주제 의식이 너무 과도했다. 심지어 가장 가여웠던 인디언 소녀에 대한 에피소드와 가장 충격적이었던 다이애나와 제리의 에피소드는 마무리조차 하지 않고 던져놓아 버려 나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혹여나 다음 시즌이 제작된다면 다시 잘 마무리될 여지가 남아 있다.


문제는 다시 시즌4가 제작된다고 해도 수습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아주 중요한 서사인 길버트와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앤은 더 이상 동화적인 사랑스러움을 가진 소녀는 아니며 오히려 그 점이 이 새로운 서사 속 앤이 갖는 매력이기도 하다. 반면에 길버트는 그대로이다. 아니, 오히려 원작보다 더 동화 속 왕자님 같다. 원작에서도 길버트는 아주 잘생기고 매력적인 아이로 나오지만 모든 여자아이가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걸 당연히 여기는 미숙한 모습도 보이고 무엇보다 아주 장난꾸러기이다. 앤을 홍당무라고 놀린 그 유명한 에피소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 속의 길버트는 또래 남학생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의젓하다. 의젓하다 못해 어른들도 갖추기 힘든 성숙한 사고방식으로 앤의 모난 행동을 두둔해 주기도 하고, 세상을 떠돌며 견문을 넓히고, 흑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정말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 물론 외모 또한 스크린에 길버트가 잡히는 순간 오직 이 소년만 눈에 들어올 정도로 출중하다. 그런 길버트가 분명히 서로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아름답고 부유한 아가씨와의 결혼을 거절하고 앤을 선택하는 결말에서 갑자기 이 이야기의 현실적인 색조와 설득력은 힘을 잃고 만다. 때로는 핍진한 가족드라마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고발적인 드라마 같기도 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로맨틱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탈바꿈하는 당황스러움이란. 게다가 앞에서 앤과 길버트 사이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서사에 충분한 공과 시간을 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정해진 결말로 끌고 가기 위한 억지스러운 도약은 너무도 아쉬웠다.


아쉬움이 컸다는 말은 그만큼 좋아했다는 말이다. 앤의 모습 속에는 속상할 때마다 난 주워온 아이일 거라 믿으며 혼자 소파 옆에서 눈물을 흘쩍이던 어린 내가 있다. 벽지에 크레파스로 공주님을 그리고 그게 나일 거라 상상하며 황홀해하던 나 또한 있다. 앤이 어떻게 재해석된다 해도 나는 앤을 좋아할 것이다. 예뻐지지 않는다 해도, 멋진 남자의 사랑을 받지 않는다 해도,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bgm.Amin Bhatia_The White Way Of D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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