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기예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토끼 Jan 18. 2019

어쩌면 너무 따스한 겨울날

내게 무해한 사람

1.

불금이다. 새해이고, 연말에 바빠서 미뤄뒀던 만남들이 있다면 이 때 쯤 다시 추진해 보는 것도 적당할 것이다. 날씨마저 겨울치고 포근하다. 물론 영상 2도의 공기 속에는 미세먼지도 함께 하고 있지만, 지난 주말 세 자리 수를 훌쩍 넘는 미세먼지 수치를 보고 나니 오늘 정도의 수치는 가볍게 느껴진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가 놀기 좋은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지금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이라면, 혹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엎드려 쉬고 있다면, TV를 보는 대신 무언가를 읽으며 놀기를 택했다면 책 한 권을 추천해 본다. 오늘의 책은 <쇼코의 미소>를 지은 최은영 작가의 두번째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 이다.


2.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멍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동안 그녀가 보여준 세계 속의 슬픔, 쓸쓸함, 그리고 다정함 속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의 결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다가, 그러나 나는 너무 자주 쉽게 나 자신을 용서하고 덮어버리기에 결코 그녀와 같은 작가가 되거나 그녀의 세계 속 인물들이 되지 못하리라는 희미한 아픔이 몰려온다. 그렇다고 하여 또 이렇게까지 지극히 ‘무해한 사람’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자신을 응시하는 치열함을 갖고 살아가야 그녀와 같은 글을 쓸 수 있다 생각하면, 그 삶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싶다.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


마지막 이야기까지 끝난 후에 마주친 이 한 줄의 평론 제목에 끝내 참아 왔던 울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세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참는 자, 견디는 자, 남겨진 자의 위치에 서 있다. 그 자리에 서서 때로는 쉽게 우는 자를 단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단죄되는 것은 그 쉽게 우는 자(대개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자기 자신이기도 한)를 단죄했던 자기 자신이다.



셋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마른 몸으로 울던 모래를 떠올렸다. 그 날 모래의 말과 눈물이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됐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_<모래로 지은 집> 중에서



화자들의 반성적 시선은 당연하게도 늘 과거로 향해 있다. 그들의 자세는 ‘다 지난 일이야.’, ‘앞을 보고 살아야지.’ 같은 말들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다. 대개 삼십 대 중반의 혼자 살아가는 여자로 설정된, 때로는 이경이고, 주영이고, 윤희이고, 나비(선미)이고, 미주이고, 혜인인 그녀들은 십대 혹은 이십대 초반의 어떤 장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떠나보낸 또 다른 그녀들이 있다. 함께 강둑에 앉아 왜가리의 위태로운 비행을 바라보던 여름날의 첫사랑 수이가 있고, 오빠의 상습적인 폭력을 고스란히 견디며 도움조차 요청하지 않던 옆집 효진이 있고,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엄마를 기다리던 동생 주희가 있고, 남자친구의 집착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만큼 외로웠던 모래가 있고, 자신이 사실 여자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거절당한 후 자살해버린 진희가 있고, 제 손길로 키운 조카를 다시 돌려보내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던 숙모 정희가 있다.    


 

수이는 시간과 무관한 곳에, 이경의 마음 가장 낮은 지대에 꼿꼿이 서서 이경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수이야, 불러도 듣지 못한 채로, 이경이 부순 세계의 파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곳까지 이경은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은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수이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 가정에 대해 이경은 자신이 없었다. _<그 여름> 중에서     



이들은 알고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은 상처를 주고받았으리라는 것을. 다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상처의 속살을 시간이 흘러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쉽게 아물지 않고 서 있다. 누구도 무해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해하려고 애쓰며, 쉽게 행복을 가장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삶은 그래서 미련할 만큼 쓸쓸하고 무력하다. 하지만 쓸쓸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거짓 행복에 함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다.



bgm.최유리_동그라미


매거진의 이전글 미세먼지의 온기 속에 갇힌 기이한 어느 겨울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