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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May 23. 2021

어제의 날씨조차 기억 못할 변덕스러운 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봄날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봄날의 기억 또한 그러하다. 비가 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환히 개고 맑은가 싶더니 황사 바람이 세상을 뒤덮는다. 매번 일기예보를 꼼꼼히 확인하며 이번 주말의 계획을 세워보지만 계획은 번번이 빗나가고 만다. 이번 주말에는 꼭 벚꽃을 보러 가야지 하면 비에 꽃이 져버리고 유채꽃을 보러 가야지 하면 연이은 맑은 날씨에 너무 일찍 꽃이 피어 버려 또 못 본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휴대폰의 여러 기능 중 카메라가 제일 바쁘다. 지나가는 날씨와 곧 변해버릴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오늘 카메라 대신 에버노트를 켜고 공원 구석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데. 그리고 당신은 왜 이 글을 읽고 있을까. 그건 아마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는 내면의 날씨와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서일 거라 생각한다. 곧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갈 것들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쓴다.  어쩌면 모든 글 쓰는 이들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상상만으로 가득할 것 같은 SF소설작가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에도 결국 우리가 붙잡고자 하는 것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포항공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작가 김초엽의 SF소설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미래 그 어디쯤의 세상에 대한 다채롭고 정밀한 상상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상상이 붙잡고 싶어 하는 건 오히려 미래가 아닌 과거이다.


‘공생 가설’에서 천재 화가 류드밀라가 시뮬레이션 아트라는 신기술로 그려내는 것은 미래 세계가 아닌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머물렀던 먼 과거의 세계이다.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마찬가지다. 우주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때 동결수면 기술을 개발했던 뛰어난 과학자가 등장하지만, 그녀가 100년이 넘도록 자신을 얼렸다가 녹이며 기다리고 있는 건 안락한 여생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했던 과거이다. 다시는 갈 수 없어진 먼 행성으로 남편과 아들만 떠나보내고 자신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지구에 남았던 과거의 실수를 되돌리고자 그녀는 이제 아무도 없는 낡은 우주정거장에 남아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본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마을 하나만 옮겨 가도 얼굴 보기 힘들었던 몇 백 년 전의 사람들이 요즘 세상의 기술을 접하게 된다면 아마 이 세상에 외로움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상상할 지도 모른다. 수천 킬로미터를 떨어져 있어도 영상통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언제든 그리운 이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SF소설에서처럼 우주를 누비게 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은 외로워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으며, 그 지나가버린 시간 속의 일들은 마음에 자국을 남길 것이므로. 또 때로 그 마음의 자국들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래도록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일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붙잡을 수 없는 과거라면 차라리 빨리 잊어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하니 얼마 전 세월호 추모 기사에서 보았던 댓글 하나가 떠오른다. 심리학까지 거론하며 꽤 장황하고 정성스럽게 쓴 댓글이었는데, 요지는 나쁜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으므로 매년 이렇게 세월호 얘기로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는 거였다. 그 때는 당혹스럽기만 했는데 이제야 그 댓글에 답해주고픈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은, 때로는 굳이 글과 그림과 노래로 기록해 두기까지 하는 것은 결국은 잘 잊기 위해서이다. 잊는다는 것은 묻어두는 것과는 다르다. 잘 잊기 위해서는 오히려 오래도록 기억하고 충분히 그 기억을 애도해야 한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마찬가지로.


‘관내분실’에서는 발전한 뇌과학 기술에 의해 죽은 사람의 기억이 데이터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미래 세계가 등장한다. 오래도록 죽은 엄마의 기억을 찾아보지 않았던 딸은 뒤늦게 엄마의 기억이 분실되었다는 걸 알고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겨우 엄마의 기억을 찾아낸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를 이해해요.”라고. 엄마를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딸은 전혀 잊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도, 엄마와 주고받은 상처도. 하지만 엄마의 과거를 찾아낸 그 순간이 역설적으로 엄마를 잊기 위한 진짜 시작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충분히 곱씹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기억을 고스란히 보관하는 도서관은 개발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나는 끄적끄적 돈도 안 되고 재미도 없는 글을 쓴다. 이 자그마한 글재주로 사라져갈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기억하고, 또 잘 보내줄 수 있기를 바라며.




bgm.나이트오프_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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