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
2019년 8월, 오락실에 딸려 있는 낡은 노래방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것이 2021년 5월의 끝자락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부르게 될 마지막 노래가 될 줄은.
원래 노래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갓 스무 살 무렵까지만 해도 자주 부르다 보면 실력이 늘 거라는 헛된 기대를 품고 노래방에 가고는 했지만, 아빠 쪽 유전자를 타고 흘러 내려온 뿌리 깊은 음치의 역사가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방에서 뽐 좀 내려면 고음이 쫙쫙 올라가야 하는데 겸손한 내 목소리는 늘 한 옥타브 이상 올라가는 걸 정중히 사양했다. 그렇다면 고음 따위 존재하지 않는 겸손한 노래들을 부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모든 노래의 음정을 반음 높여 부르거나 낮춰 부르는 신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허헛, 참. 세상엔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고, 나는 그렇게 자연스레 노래방과 멀어졌다.
물론 원치 않아도 종종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사회 초년생일 때는 그 일이 참 고역이었다. 그런데 또 시간이 흐르고 나니 종종 별 이유 없이 노래방에 가고 싶어지는 날들이 생겨났다. 스무 살 때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어떤 노래든 부르고 싶어지는 날.
그 날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노래방 기계에 동전을 넣고, 오랜만에 노래방을 찾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참이나 노래명과 가수명을 반복하여 검색하다가 어렵사리 안녕하신가영의 <좋아하는 마음>을 골랐다. 요즘은 이런 인디 가수의 노래도 노래방에 다 들어와 있구나, 하고 신기해 하며.
알 것 같은 마음과 알 수 없는 떨림이
나에게로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돼,
좋아해
이 부분을 부를 때 어쩐지 마음이 뭉클했던 것만 같다. 물론 내 노래가 뜻밖에 너무 듣기 좋아서는 아니었다. 잘 부르든 못 부르든 간에 아무런 수식 없이 '좋아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 자체가 참 오랜만이었고, 그 생경함이 뭉클했다고나 할까. 몇 곡 더 부르고 가려다가 나는 만족스러울 때 그만두자 싶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어쩌면 그 날 이 노래를 좀 더 연습해서 다음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들려주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곧 마스크 벗기가 무서워지는 세상이 되면서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어졌다. 아마 전염병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래방에서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러본 지 일 년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 다들 2019년의 그 어느 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가 뭐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다시 노래방을 마음껏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제일 먼저 어떤 노래를 고르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