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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May 31. 2021

당신이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를 기억하나요

좋아하는 마음

2019년 8월, 오락실에 딸려 있는 낡은 노래방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것이 2021년 5월의 끝자락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부르게 될 마지막 노래가 될 줄은.


원래 노래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갓 스무 살 무렵까지만 해도 자주 부르다 보면 실력이 늘 거라는 헛된 기대를 품고 노래방에 가고는 했지만, 아빠 쪽 유전자를 타고 흘러 내려온 뿌리 깊은 음치의 역사가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방에서 뽐 좀 내려면 고음이 쫙쫙 올라가야 하는데 겸손한 내 목소리는 늘 한 옥타브 이상 올라가는 걸 정중히 사양했다. 그렇다면 고음 따위 존재하지 않는 겸손한 노래들을 부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모든 노래의 음정을 반음 높여 부르거나 낮춰 부르는 신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허헛, 참. 세상엔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고, 나는 그렇게 자연스레 노래방과 멀어졌다.


물론 원치 않아도 종종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사회 초년생일 때는 그 일이 참 고역이었다. 그런데 또 시간이 흐르고 나니 종종 별 이유 없이 노래방에 가고 싶어지는 날들이 생겨났다. 스무 살 때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어떤 노래든 부르고 싶어지는 날.


그 날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노래방 기계에 동전을 넣고, 오랜만에 노래방을 찾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참이나 노래명과 가수명을 반복하여 검색하다가 어렵사리 안녕하신가영의 <좋아하는 마음>을 골랐다. 요즘은 이런 인디 가수의 노래도 노래방에 다 들어와 있구나, 하고 신기해 하며.


알 것 같은 마음과 알 수 없는 떨림이

나에게로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돼,

좋아해


이 부분을 부를 때 어쩐지 마음이 뭉클했던 것만 같다. 물론 내 노래가 뜻밖에 너무 듣기 좋아서는 아니었다. 잘 부르든 못 부르든 간에 아무런 수식 없이 '좋아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 자체가 참 오랜만이었고, 그 생경함이 뭉클했다고나 할까. 몇 곡 더 부르고 가려다가 나는 만족스러울 때 그만두자 싶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어쩌면 그 날 이 노래를 좀 더 연습해서 다음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들려주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곧 마스크 벗기가 무서워지는 세상이 되면서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어졌다. 아마 전염병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래방에서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러본 지 일 년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 다들 2019년의 그 어느 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가 뭐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다시 노래방을 마음껏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제일 먼저 어떤 노래를 고르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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