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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Oct 10. 2022

난 아직도 시행착오 투성이야

몇 장 안 되는 아빠의 독사진

Daddy, It's picnic time!


왜 그렇게 아빠들은 사진을 찍어 주기만 하는 역할일까? 아빠가 가고 나서 남은 사진들을 정리해 보니 가족여행 때마다 엄마랑 언니랑 내 사진은 가득한데 정작 아빠가 찍힌 사진이 별로 없어. 몇 장 찾아낸 것도 거의 우리와 다함께 찍은 것들이야. 아빠는 늘 카메라 뒤에서 찍어주는 역할이었구나. 새삼 느끼게 되는 거 있지.


아빠, 잘 지내고 있어? 휴대폰 갤러리를 샅샅이 뒤져서 겨우 아빠 독사진을 찾아냈어. 사진 속 아빠는 한쪽 팔을 괴고 빙긋이 미소 짓고 있어. 기쁨이 툭 터져 나오는 느낌의 표정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머금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딱 아빠와 어울리는 표정이라고 생각해.


이 때만 해도 아빠 얼굴 참 좋았다. 삼 년 전에 아빠랑 엄마랑 같이 익선동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골목 구경도 했을 때인데 기억나? 그 날도 날씨가 참 좋았어. 아빠의 은발이 청명하고 고즈넉한 익선동 풍경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어. 이 사진은 그 날 찻집에서 찍었던 건데 역광이라 얼굴이 흐리게 나오긴 했지만 아빠 표정이 참 마음에 들더라. 그래서 이 사진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어. 앞으로 여행 갈 때마다 걸고 다니려고. 그렇게라도 아빠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삶이란 게 참 짧고 갑작스럽지? 그렇게 딸들을 애지중지 잘 키워놓고는 제대로 효도도 다 못 받아보고 가시고. 병과 죽음이 착한 사람 나쁜 사람 골라 오는 건 아니니까 억울해해봤자 소용없다는 건 아는데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네. 너무 아쉬워. 한평생 일만 하시다가 이제 퇴직하고 조금만 더 놀다 가셔도 좋았을 텐데. 


익선동 말고도 아빠가 서울 놀러 오시면 모시고 가고 싶은 곳들이 곳곳에 정말 많았단 말이야. 이제야 좀 철이 들어서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나중에 엄마아빠 서울 놀러오시면 여기 모시고 와야지 하고, 풍경 좋은 곳 발견하면 또 나중에 여기 모시고 와야지 했는데 결국 아무데도 같이 놀러 못 가보고 나 사는 신혼집 구경도 못 시켜드렸어. 그나마 결혼식에는 아빠가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서 참석하셨을 수 있었던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할까?


아빠랑 똑같이 팔을 괴고 아빠 사진을 바라 봐.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남겼다는 말을 떠올려봐. 죽음이 두렵지 않냐는 엄마 질문에 아빠가 그랬다면서.


- 두려울 게 뭐 있어. 두 딸들 다 키워서 짝 만나는 것까지 봤으니 내 할 일 다했는데.


참 아빠다운 말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아빠, 사실 난 아직도 시행착오 투성이야. 분명 다 커서 결혼까지 했는데도 쉽게 휘청거려. 아빠처럼 그렇게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건 아마 평생 불가능할 것 같아. 그래도 사진 속 아빠 미소를 보면 그 휘청대는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다독일 수 있을 것 같아. 다 괜찮다고. 삶은 어차피 흘러가는 거라고. 어떻게 굽이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그렇다 해서 나 자신을 가여워할 필요도 변명할 필요도 없는 거라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아빠와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

말간 햇빛을 등지고 잎사귀마다 조용히 빛나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작고 단단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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