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의 내기 문화

돈 걸린 순간 나오는 인간 본성

by 서코지


"은갈치야 먹갈치야?"


"먹갈치로 해"


"먹갈치? 오케이"


먹갈치면 오케이를 준다는 말에 캐디인 내가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쉰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식사메뉴를 고르는 중인 것 같지만 이건 골프 내기의 룰 협상내용이다.


골프장에 근무하면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어디서 그렇게 다양한 내기방법들과 신조어, 은어 같은 것을 알아오는 것인지.


지금까지 다양한 내기 방법들을 보면서 그걸 만들어온 사람도, 그게 전파되는 방식도, 만들어 둔 것에서 또 다른 방식의 룰로 변경하는 것도 참 여러모로 감탄하고 있다.


은갈치 먹갈치 역시 게임룰에서 만들어진 골프장의 신조어(은어) 같은 것이다.


은갈치란 - 퍼터헤드부터 그립 전까지 스틸이 은색이라 은갈치


먹갈치란 - 스틸 이후 그립이 대부분 검은색이라 퍼터헤드부터 그립 끝까지를 먹갈치


그리고 ‘오케이(OK)’는 짧은 퍼팅을 실제로 치지 않아도 들어간 것으로 인정해 주는 관례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내는 대단한 창의력들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신다.




내가 근무하는 골프장은 빠른 그린을 자랑한다.

코스관리에 진심이고 항상 빠른 그린을 위해 노력하는 코스관리부들이 있다.(그만큼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 여기는지 캐디에게 갑질들을 하는 곳도 많지만 그들의 노고도 인정한다.)


내 근무지 골프장은 요즘 같은 봄시즌인 4월은 그린스피드가 3.3이 나온다.


아마추어는 이렇게 빠른 스피드에서 잘 치기도 여간 쉬운 게 아니라는 걸 골프를 쳐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것이다.


보통 여자 프로 경기에서 3.8 정도의 스피드가 나오고, 내가 가본 가격이 조금 저렴한 대중제 골프장들에서는 2.3 정도 나오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2.8 정도 되는 곳도 관리를 잘하는 곳이라 해야 할 거다.


빠른 그린을 자랑하기에 처음 내장하신 고객분들은 많이 당황하며 '어려운 그린'이라고 혀를 내 두르기도 하고 그나마 회원님들은 빠른 그린에 적응하시어 -홈어드밴티지-도 존재한다.


그런 그린에서 사모님들의 내기가 시작되면 은갈치와 먹갈치가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다.

3 펏으로 끝내기도 쉽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그립한개가 약 30cm도 되지 않는데도 그 길이 만큼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가 결정되어진다.


무슨 자신감인지 굳이 은갈치라는 룰을 적용했다가 도저히 진행이 되지 않거나 플레이어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먹갈치로 바꾸시는 팀들도 수두룩하다.


골퍼 플레이어라면 2 온에 4 펏을 한 순간 멘털이 흔들리시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사포들끼리는 꼭 어느 선까지 컨시드를 줄 것인지 정해두어야 한다. 무조건 말이다.


조금이라도 컨시드 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데도 오케이를 주면 분명 말이 나온다. 누군 오케이 주고, 누군 오케이 안 줬다는 이유로 볼멘소리를 하고 입을 삐죽거린다. 그리곤 보복 같아 보이는 똑같은 행동(오케이 안 주고 돌아서기)을 시작하고 분위기가 싸아-해지는 숨 막히는 라운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 아마추어골퍼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서로 컨시드 거리는 적정하게 줍시다.*



평균적으로 봤던 사포의 내기의 판돈은 한 명당 약 2만 원이다. 누군가에겐 적은 돈이 아닐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결코 많은 돈이 아닌 2만 원. 15만 원 정도의 캐디피에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돈 8만 원의 돈으로 내기가 시작된다. 왜냐? 더 모으고 시작했다간 정말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분명 돈 많은 댁의 사모님들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총 상금 8만 원의 게임이 걸리는 순간 별별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포백(사모님 4명)이다.


고집이 세고 승부욕이 강하신 회원님이 있으시다.

내기를 하다가도 본인 스코어는 물론 다른 3분의 스코어를 모두 세고 계신다.

홀컵에 공이 떨어지지 않으면 캐디가 본 라이가 안 맞다며 '탓'을 하고 빈정거리셨다.

다른 회원님이 본인보다 더 잘 치시는 순간 "바람소리도 시끄럽다."는 꼬장을 부리신다.


어프로치 거리가 남았을 때 거리를 불러드렸다.


"회원님! 60m 남았습니다."


공은 붕- 뜬 채 40m밖에 나가지 못했고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언니!!! 이거 60이 아니라 80m야!! 거리를 그렇게 부르면 어떻게. 어휴 참"


"..........."


어이없었지만 나는 차마 "40미터 치셨잖아요!!"라고 한마디도 못했다. 당장엔 증명할 길도 없고 시간만 드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거리측정기라는 기계가 보편화되어서 대부분 가지고 다니기에 그나마 이런 '거리'에 대한 탓이 덜하시고 시시비비 가릴 일이 덜하기에 꼭 필참 해야 하는 물건이기도 하다(거리측정기 만들어 주신 분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기계로 찍고 거리를 불러도 꼬장을 부리시는 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그런 분들의 마음은 여전히 이해불가이기도 하다.



다른 분의 스코어를 '트리플'이라며 강력하게 주장하시던 회원님

내가 세어봤을 땐 분명 '더블'이었기에 함께 어필했지만....

그분의 스코어는 회원이 우겨버린 트리플이 되었다. 본인들끼리도 으레 있는 일인지 걸어가는 회원의 뒤통수에 대곤 그저 어이없는 웃음을 지은채 "쯧" 한번 혀를 찼다.

회원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걸어다시는데 걸음걸이도 무척 빠르고 씩씩하게 본인 공으로 걸어간다.


"저 회원이 왜 걸어가는지 알아?"


물어보는 의도를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말했다.


"저 회원님은 매번 저렇게 걸으시던데요 건강 생각하셔서 걸으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빨리 가서 남들 못 볼 때 자기 공 좋은 자리 옮겨 놓고 치려고 그러는 거야. 죽으면 알까기 하고!"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공을 확인하는 척 만지곤 좋은 자리로 옮겨 치는 모습을, 동반자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르는 척, 혹은 못 본 척 애써 고개 돌리는 것이겠지.


그들의 입장에선 저런 회원의 단점도 있지만 함께 어울리는 뭔가 다른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함께 하는 거 아닐까?



물론 저런 분들에겐 꼭! 돈 8만 원이 중요해서 저렇게 비겁한 편법을 쓰는 거라곤 보지 않는다.

그저 과한 승부욕에 눈이 멀으신 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승부욕이라는 것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했던 과정이 있을 때 이기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다면 좋은 쪽으로 인정하지만, 저렇게 공정하지 못하게 경기를 하고 이긴 것조차도 본인은 만족하는 것일까.


남들은 인정하지 않은 승리, 본인만이 만족하는 영광 없는 승리에, 남들이 보기 좋지 않은 인간 본성까지 드러내며 이겨도 만족한다는 게 나에겐 신기한 광경들이다.


"돈이 걸린 순간, 사람은 결국 자기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