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가 겪은 진상 캐디라고요?

사실 그 진상 캐디가 저였습니다.

by 서코지


캐디피 15~17만 원인 시대

골퍼들 입장에선 당연히 싸지만은 않은 금액이다.


캐디이면서 한편으론 골퍼인 내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진심으로 캐디피가 아까울 정도의 캐디도 분명 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받으면서도 일하기 싫어하는 게 보이는 그런 캐디들을 보면 나조차도 정말 돈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는 거다.


"진짜 캐디피 아깝네!"


사실 골프장의 진상(고객)들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거의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다.


반대로,

골퍼들에겐 진상캐디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충분히 많이 나올 수 있을것이다.





2개월의 교육, 그리고 홀로 남겨진 시간.



캐디는 약 2개월간의 초보 교육이 끝난 후에는 실수를 하던 칭찬을 받던 오롯이 혼자 그 시간을 이겨내고 감내해야 한다.


고작 2개월의 교육 이후 번호를 받고(일을 시작하면 캐디번호가 생긴다.)

나 혼자,

골프장을 내장한 4명의 연세 드신 손님들을 보조해야 하는 경기보조원이 돼야 하는 것,


정말 1년 차까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리바리, 정신 차리기도 힘든 상황들의 연속이 매일 지속된다.


나 역시도 그 당시 거의 매일매일 자괴감에 빠져 이겨내기 힘들기도 했다.


함께 교육받고 번호 받은 동기들을 보며

'저 친구들도 해내는데 나라고 못할 소냐'

마음 잡으며 멘털을 부여잡았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번호 받고 1년간의 내가

진상캐디였을 것이다.



길고 넓은 광활한 코스에서 작고 하얀 공이 200m씩 날아다닌다.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고 보고 찾아줘야 하는 것부터 고난이었다.


골퍼들이 치는 공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잠시만 시선을 놓쳐도 못 보기 일쑤! 보고 있어도 놓쳤던 시기니까 말이다.


세컨드에선 남은 거리를 불러주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던지


"내 공 거리 얼마나 남았어?"


물어보시는 고객님에게 거리 알려드리는데 한참이 걸린다.


"...... 음...... 저기서..... 앞핀(혹은 백핀)이니까..."


나는 거리목과 공의 위치를 좌우로 살피며

최선을 다 해서 거리 계산 중이지만 머뭇거리며 나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고객들의 인내심이 고갈되어 갔다.


나보다 먼저 거리 계산이 끝나고 툴툴거리는 분들도 많았다.


"..... 아 됐어 8번 아이언 줘! 가져갈게."


거의 이런 식의 마무리가 되기 일쑤.


거리목이 50m 간격으로 있는데 초보캐디가 거리 가늠이 금방 될 리가 있겠는가.

특히 확실하지 않으면 자신감 있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 내 성격상, 긴장해서 바짝 마른 입술사이로 대답이 나오듯 하면서도 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거리는 금방 툭 튀어나오지 못했고, 골퍼 입장에선 우물쭈물 답답하게 신입캐디의 모습을 지켜보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초보 시절 경기에 도움을 주기보단 답답함에 못 이겨 거리를 직접 보시는 골퍼들의

'클럽 셔틀'되어있었다.


텅 비어 가는 머릿속으로 그들이 갖다 달라는 채만 하나씩 하나씩 뛰어다니며 나르는 캐디로 전락해 버렸다.


여러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도움을 주긴커녕 자신감이 없어 말도 못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졌다.




웃으며 버티는 자가 일류(가 될 희망이라도 있다.)


초보캐디를 나가면 고객입장에선 답답하고 돈이 아까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그나마 그만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교육받고 번호를 받아 캐디를 시작한 곳이 회원제 골프장이었기 때문이라 느낀다.

자주 내장하시던 회원님들께서 알아서 거리와 라이를 잘 봐주셨고 신입캐디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오히려 어린 나이었던 나에게 캐디 일에 대해 알려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많이 도와주셨기에 초반에 그만두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많이 부족한 면이 었었지만 땀 흘리며 뛰어다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듯이 대부분의 고객들은 이해해 주려하고 참고 넘어가 주셨다.


다행히도 그렇게 '함께 라운드를 못하겠다'는 진상캐디가 되는 것까지는 가지 않은 채 잘 넘어간 것 아닐까 싶다.



캐디피를 지급하시는 입장에선 신입캐디들을 만나면 캐디피가 조금 아까우실 수 있으실 거다.


하지만 이제 막 새로운 일에 발 들이는 신입캐디들을 응원해 주시고 도와주셨던 많은 골퍼분들 덕분에 베테랑캐디들이 생길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객님들께 만족을 드릴 만큼 최선을 다했는가?” 그 질문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캐디가 되기 위해, 내일도 웃으며 코스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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