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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 달 Apr 08. 2022

오늘 왜 이렇게 바쁘지?


‘이것만 하고…’

‘이것만 끝내고…’

 

그렇게 다른 모든 일을 일시 정지시킨다.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생기면, 다른 모든 일은 뒤로 미룬다. 마치 세상이 그 하나의 일만을 위해 존재하듯 나의 모든 사고가 멈춘다. 일단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행사를 앞둔 날엔 심지어 끼니까지 건너뛴다. 마음만 먹으면 5분이면 될 일에 전혀 마음을 주지 못한다. 아이를 키울 때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아마 여기서 기인했으려나.

 

적절한 시간을 살아보고 나서야, 그 중요한 일이란 것이 매번 여러 가지 형태로 동시에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오늘 왜 이렇게 바쁘지?’가 아니라 매번 바쁘더라. 인생은 청룡열차처럼 지금 폭풍이 다 지나가야 다음 폭풍이 도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분고분 기다릴 일들이 아니었다. 호수 위에 오리배처럼 방향과 속도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될수록 호수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 돌보아야 할 오리배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360도 빙 둘러가며 사건이 터질 기회가 많아진다. 난파된 배들을 부여잡고 울 시간도 없이 다른 배들을 보살펴야지. 힘을 내야지.

 

단절의 상태로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다시금 일을 주워 든다. 오랜만이라 무작위로 집어 든다. 마감이 다져오면 예민해진다. 매번 마감이고 항상 예민하다. 같이 사는 가족들에게 그 긴장이 전해진다. 가족이란 어차피 서로 상처 주며 그 자리를 보듬기 마련이지만 내가 주는 상처의 크기만큼 자책도 커져만 간다. 하나의 일을 위해 잔뜩 털을 곤두세워 예민해지고, 다른 모든 일은 뒷전이라면 나는 옳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마감은 그저 마감일뿐, 시간은 그저 잘도 흘러가고 산재해 있는 다른 오리배들도 돌보아야 한다. 부딪히지 않게 침몰하지 않게 좌초되지 않게 표류하지 않게.

 

골몰해보니 삶의 루틴들은 항상 행해져야 하더라. 먹기 위해 숨 쉬는 것을 잠시 멈출 수 없고, 놀기 위해 자는 것을 멈출 수 없듯, 이 엄청나게 다양하고 믿을 수 없게 복합적인 일을 우리는 그저 해내야 하더라. 어른이란 무릇 그렇다고 한다. 다만 하나의 팁이 있다면 그 일에 무게를 싣지 않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 엄청난 일의 무게감을 쏙 제거하고 깃털처럼 먼지처럼 대할 것이다. 삶은 참으로 상대적이라 어느덧 나도 가벼워져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고, 걷고, 달리고, 일을 하며 나를 돌본다. 아이를 돌보고, 집을 돌보고, 가족을 돌본다. 그것이 일상이 되어, 무수한 오리배들이 호수 위를 유유히 자유롭게 내달리는 날을 상상해본다. 언젠가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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