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은 달 Apr 01. 2022

나는 왜 쓰는가.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여보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 다 하게 해 줄게.”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 함께 사는 분이 묻는다. 다 죽어가듯 보였나. 뜬금없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같은 이상한 질문이다. 주말 스케줄을 잡기 위한 단순한 물음일지도 모르는데 울컥 눈물이 새어 난다.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들킬까 애써 시선을 피한다. 특별히 원하는 건 없다고 짧은 답을 내놓는다. 무엇인지 알 것 같지만, 정확히 알고 있지만, 동시에 영원히 모를 것 같은 그 눈물의 정체를 알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동안 꽤 여러 이유로 글을 쓰기로 했지만, 오늘은 또 이런 이유를 끄집어낸다.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이유를 모은다. 내일이면 또 글을 쓰지 않을 테고, 그다음 날 또 글을 쓸 이유를 찾아내겠지.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행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육아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무수히 들은 조언과 경험과 이야기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 진짜 출산을 하고 진짜 아이를 길러보니 이것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강해지고, 예민하고, 여유롭고 동시에 살아 있어야 한다. 아는데, 다 아는데, 내 새끼 내가 낳아서 키우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아이를 키우는 행복의 크기와 불행의 크기를 비교하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암컷으로 태어나 자궁과 가슴을 겸비한 이유로, 나는 임신과 출산과 수유와 육아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이 구석기시대였다면 나는 꽤 행복했으려나. 안타깝게도 나는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이란 교육은 다 받았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해 어렵게 자리를 잡아 한때 일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출산 후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는 것도 모성애가 넘쳐난 나의 결정이고, 이제 와 일을 재기하기 어려운 것도 능력 부족한 나의 결점 때문이라는 자책이다. 이 모든 나의 결정과 결점을 안고 이제 겨우 세 살과 여섯 살인 두 아이와 부둥켜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다. 끝이 없는 엄마의 삶을.


   때는 근거 없는 오만함으로, 적어도 나는 특별한 삶을 살 것만 같았다. 환상은 모래처럼 쓸려나가고 나에게는 이제 ‘엄마라는 호칭만이 남았다. 인간은  어찌나 위대한지 최대한 구김살을 펴고 셀프포장을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괜찮은 듯하다. 여유롭고 넓은 마음으로 만물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며, 소수의 인권 보호를 통해 더불어 살만한 세상을 위해 뜻을 함께한다.   마음과 경력과 미래를 대체할 무엇이든 찾아낸다.  정도면  괜찮은 하루인  같은 날들이 쌓여가고 그렇게  ,  년이 흘러 지금 여기까지 왔다. 못난 경제력도 처진 살가죽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그런 괜찮은 날들 사이사이, 문득 눈물이 퐁퐁 샘솟는다. 어딘가 샘의 수원이 있을 텐데, 공허한 그 안쪽 어딘가에 샘솟는 물의 원천이 있을 텐데. 잃어버린 나의 존재감인지, 그저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인지, 먼저 보낸 너의 원혼인지, 능력 없는 나의 처지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혹은 그 모두이던가. 샘의 원천으로 물바가지 주욱 내려 한 두레박씩 퍼 올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간 알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로써 가지는 여성 동지들의 동일한 상실감인지, 끊임없는 재생산노동의 대가로 사라진 내 영혼 탓인지, 그저 내가 이 정도 인간밖에 안 되는 것인지. 대체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이고, 나는 커서 무엇이 될 것인지 궁금해서, 그래서 나는 글을 써볼까 한다. 일단 썼다. 써야 쓰는 거니깐.


(2021)


(2021)
작가의 이전글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