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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 달 Apr 04. 2022

언니들 구출하기

밥하기 싫어서 글쓴건 아니고요

저녁밥을 짓기 위해 아픈 몸 부여잡고 일어나 밥솥뚜껑을 열고 남은 밥을 확인한다. 양도 적은데 고두밥이 들어있다. 엄마가 새로 밥을 했는데 밥솥의 버튼을 잘못 눌러 그렇게 고두밥이 되었다고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나에게 다다른다. 그 짧은 와중에 밥을 망친 엄마를 원망한다. 그렇게 꿈을 깬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각이다.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이 몸이 내몸인지 네몸인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이들에게 밥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꿈속에서도 밥을 하고 있었다. 서글퍼라. 된밥을 지었다고 그 와중에 나는 또 엄마를 원망했다. 못됐다. 그렇게 여성해방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엄마조차 해방시키지 못하는 나였다. 꿈에서조차 말이다. 나의 무의식은 언제까지나 엄마를 밥 짓는 사람으로 명명하고 그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묶어놓고 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발부 둥치며 목소리 높여봤자 나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비록 꿈일지라도 정곡을 찔린 것만 같아 가슴이 아렸다. 그 와중에 엄마의 잘못이라며 나에게 고자질한 제3의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어른의 목소리였는데 내가 아는 이의 것은 아니었다. 특정인이 아니라니, 누구든 될 수 있다. 꿈에 등장한 여성 셋이서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고자질하고 힘겨워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여섯 시 반이 넘어가고 현실세계의 밥솥엔 밥이 없었다. 순간 꿈속의 그 된밥마저 그리워졌다. 일요일 저녁은 뭐가 좋을까. 제주 농가 돕기를 위해 십 킬로를 구매한 당근을 떠올리며 당근 김밥을 해볼까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머릿속으론, 며칠 전 담근 무쌈으로 단무지를 대체하고, 계란을 굽고, 당근을 채 썰어 기름에 살짝 볶고, 스팸은 구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김밥 속재료 색 배합은 어떨지, 곱창김으로 김밥을 말면 옆구리가 터지지는 않을지 짧은 순간에 참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남편은 몰골이 말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몸도 힘든데 시켜먹자며 배달앱을 실행했다.


점심도 시켜먹었는데 저녁까지 시켜먹는 것이 죄스러웠다. 아이들에게 배달음식만 먹이는 죄책감이 쌓여만 갔다. 내 한 몸 아프니, 음식 해먹을 사람이 없구나. 내가 바로 요리사구나. 깊게 생각하지 말자. 남편은 그새 주문을 완료했다. 이것저것 따지며 쿠폰이며 배달비며 가성비며 그 와중에 맛까지 따지느라 주문하는데 오만 년이 걸리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요리사는 아니지만 주문사. 배달도 일순간 마치는 그가 부러웠다. 요리는 못하지만 주문은 잘했다. 어쩌면 요리도 잘할지도 모르지만 요리의 책임감에서 구원받은 그였다.


어쩌다 여성은 주방에 갇히게 되었을까. 도대체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린 시절 살던 시골에 땔감으로 불을 지피는 무쇠 아궁이가 있었다. 남아있는 기억이 유독 없지만 그 옛날 그 흙바닥 부엌 장면에는 언제나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만 보인다. 어린 시절 언젠가 나의 꿈에 증조할머니는 부처님으로, 할머니는 저팔계로 나오셔서 하필 또 그 흙바닥 부엌에 덩그러니 앉아 계셨다. 나는 꿈에서조차 나의 모든 어머니들을 그렇게 부엌에 가둬놓았다. 늦었지만 그녀들을 부엌에서, 골방에서, 어둠 속에서 해방시켜야만 한다. 물론, 나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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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지만 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는 아니고 그저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광활하고 망망한 책임감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본 글이 시작되었음을 밝히며, 이만 저녁 지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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