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은 달 Jan 16. 2023

한-숨

30일 쓰기

“한숨 쉬지 마라.”


엄마와의 통화에 2할 정도를 차지하는 문장이다. 엄마가 지금 내상황이 되어보라며,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말을 이해하게 될 거라는 구구절절한 말들을 꿀꺽 삼켜 나만 듣는다. 한숨 쉬면 복 나간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 화는 더 치솟고 매번 지적당하는 나의 한숨은 점점 더 깊어진다.


그러고 보니 유독 엄마와의 통화에서만 한숨이 잦다. 가끔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가 일순간 나를 비무장지대로 데려가버린다. 가장 솔직하고 가장 심연에 가까운 내가 고개를 디민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미소로 장착된 가면은 단번에 벗겨진다. 어떤 연유인지 엄마의 이름 석자가 핸드폰 화면에 뜨며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스르르 힘이 풀려버린다. 가장 나답게 모든 대화에 툴툴거린다.


어쩌면 그저 “나 너무 힘들어 엄마”를 한 번의 한숨에 담아 짧고 간결하게 전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다. 얼마 전 엄마와 크게 싸우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맹세까지 할 정도로, 엄마와의 관계는 꼬인 실타래처럼 엉망진창이다. 함께 살았던 기간은 유치원과 초중고시절을 합쳐 고작 13년이 전부인 삶이다. 함께 한 물리적 시간이 엄마와 자식의 유대관계에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걸까. 아무리 부정해도 나는 엄마라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탈해진다.


최근 남편의 야근이 잦아지다 급기야 지난주는 연속 일주일을 넘겼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출근한 그는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피곤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현관문을 통해 가족에게 돌아온다. 그것마저도 몸만 귀가하고 정신은 온통 회사에 두고 온 모습이다. 부재의 연속이다. 저녁도 거르고 온 적이 많아 늦은 시각에 간단한 끼니를 차려내며 밥은 제때 먹고 일하라며 걱정 섞인 말을 건넨다.


나 힘들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바쁠 거면 회사 그만둬라, 이러려고 이직을 했냐, 아니면 육아휴직이라도 해라, 나도 일 좀 하자, 육아는 혼자 다 하냐, 난 이제 집안에서 떠나지 못하냐 등등 갖가지 문장들은 가면 뒷면으로 숨겨 욱여넣는다. 쌓인 문장들은 깊은 한숨으로 응축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살짝 열린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즐거워야 할 토요일 아침이다. 냉동생지를 꺼내 살짝 해동 후 오븐에 넣고 크로와상을 잔뜩 굽는다. 방울토마토를 씻고 배를 깎아 접시에 담아낸다. 저지방우유를 잔에 붓는다. 식사가 준비되고 아이들을 부른다. 자다 깬 남편도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크로와상에 설탕이 빠진 게 아니냐, 배 맛이 이상하다, 우유 안 먹을 거야. 각종 불만들이 제기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쌓인다. 한숨 그만 쉬면 안 되냐는 남편에 말에 또 깊은 한숨을 뱉어버린다. 그러자 남편도 한숨을 내뱉는다.


신기하게도 남편의 그 한 번의 한숨이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다. 여태 내가 내뱉은 한숨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하는 형국이랄까. 지금껏 내가 뿜어낸 한숨들을 겪어낸 엄마에게 불현듯 미안함이 엄습한다. 역시 역지사지, 당해봐야 아는 거구나.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다는 관용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주위 모든 사람들의 땅을 꺼뜨리고 깨진 지각 위에서 위태위태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각은 반성으로 이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을 일으킨다. 불행과 불안을 퍼다 나르는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제야 알았지만 과연 나의 한숨을 멈출 수 있을까. 습관처럼 들러붙어있을 이 한숨을 어떻게 덜어낼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산뜻한 들숨과 날숨으로 모두 조각조각 내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우선 애플워치가 알람 해주는 1분 심호흡으로 대체하는 연습부터 해볼까. 더 이상, 한숨은 안되겠다.





#한숨 #구조신호인가

작가의 이전글 금요일의 낮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