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호주를 찾는 이유는.

비행기안에서

by 밤은달

2년새 4번째 찾는 호주다. 한국에 유학왔다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호주인 느낌이라는 지인의 말에, 나도 어느 정도 그리 느끼는 심정임을 되새긴다. 혹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휴가를 맞아 고향에 가는 심정이랄까. 물론 호주에는 집도 절도 없다.


어떤 연유일까. 목적없이 혹은 허망한 목적으로 매사에 열심인 한국의 공기에 지쳤나. 그래서 북반구가 아닌 남반구에서, 전혀 다른 지정학적 위치에서, 삶에서 물구나무서기한 채, 천천히 유유자적하며 자연 속으로 깊이 걸어들어가는 호주여행은 그래서 더욱 중독이 되어 버린 것일까. 갈때마다 마주치는 다른 풍경들 앞에 나는 먼지가 되고 동시에 먼지가 내가 된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곧 나이듯, 거대하고도 미세한 자연의 품과 시지각 촉각의 마력이 다른 모든 세계를 재껴내고 승리를 이끈다. 빼어나고 그림같은 풍경이나 인간이 지어낸 아름다운 건축과 작품의 보고인 유럽과는 전혀 다른 마력을 품고 있다. 그 마력에 휩싸여 몇번의 여행- 이것은 여러 상황의 교집합이 빚어낸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 인생에 다시 없을 시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의 총체. 적분을 만드는 과정의 모든 미분들.


사케를 들이부은 다음날 얼토당토않하게 금주를 다짐한 일도, 드디어 뒤집기를 독학한 다섯달배기 조카를 만난 일도, 송추계곡을 갈줄 알았는데 과천미술관을 간 일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오랜만에 노래방을 간 일도, 산타할머니 두명과 만둣국과 라떼를 마신 일도,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버섯덮밥을 먹던 일도, 복숭아나뭇가지를 구하려다 삼계탕을 마신 일도, 발렌타인을 바라보며 포카리스웨트를 마신 일도, 다리가 아파 지하철 바닥에 쪼그리고 갔던 일도, 전시장에 걸린 작품에 매료되는 일도, 귀신인지 뭔지 모를 령들과 밤새 씨름하는 일도, 너무나 읽고싶어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자마자 책장에 꽂혀버리는 일도, 두 딸이 나에게 폭 안겨 충만한 온기가 온 우주를 뒤덮는 일도,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일도,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일도, 물음표와 호기심이 바깥을 향하는 일도, 그것의 모든 시작은 나로부터여야 하는 것을 알게 된 일도, 하늘은 온통 깜깜하고 비행기 내부도 컴컴한데 나만 혼자 핸드폰 메모장에 이런 소리를 지어내는 일도, 이러다 멈출 수 없을까봐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겠다 생각하는 일도.


이 모든 순간들의 총체. 생이고 삶인, 다시 오지 않을 것들의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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