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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어느 겨울이었다. 나는 화면 속 한 동물보호단체의 채용공고를 보았다. 그곳은 광화문 광장에서 개식용 반대 시위를 하는 걸로 유명한 단체였다. 단체의 웹사이트에는 정치인에게 유기견을 입양시키는 대표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그때 나는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기후 정의든 동물 학대 반대든 행동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약자를 위해 외면받는 문제와 씨름한다는 점에서 같았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대부분 달랐던 것 같다. 기부금이 횡령되었다거나 환경 단체가 박물관 그림을 훼손시켰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이를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대부분 '이래서 기부 안 한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래도 저런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는 거 아닌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더 많은 약자들이 고통받을 테니까. 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그들이 유난을 떨기에 세상이 그나마 이 정도라고 생각했다.
무기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던 나는 공고를 주의 깊게 읽었다. 단체에서 모집하는 직무는 두 가지였다. 유기되거나 학대당하는 강아지를 직접 구출하고 돌보는 현장직,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마케팅 업무. 강아지가 학대당하는 현장을 마주하면 쿠알라룸푸르에서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것 같았다. 분명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병이 날 것이 뻔했다. 일단 후방에서라도 도움이 되려 마케팅 직무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일주일 뒤 단체로부터 답장이 왔다. 나흘 뒤 면접을 보자고 말했다. 답장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하늘로 뻗었다. 몇 번이고 메일을 다시 읽어봤다. 대기업 서류 전형에 통과되었을 때도 이보다 기쁘진 않았던 것 같다. 돈과는 거리가 먼, 고된 직업임에도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빈틈없이 면접을 준비했다.
그리고 면접 당일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면접장소인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얼마 후의 면접이 어떻게 진행될지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광화문역에 도착한 후 열차에서 내려 역 입구로 올라갔다. 회색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어 광장 사람들의 정수리가 반짝거렸다. 각양각색의 무리들을 지나쳐 면접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넓지 않은 가게에는 손님이 창가에 앉아있는 남녀 말고는 없었다. 저들이 면접관인지 긴가민가하던 차에 그들이 먼저 내가 면접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 OO”
여자는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OO씨도 아니고 OO?'
순간 당황했다. 경험상 면접에서 초면에 반말을 하는 회사는 거르는 게 맞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40대 후반정도로 단체의 임원으로 보였다. 여자는 단발머리에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남자는 키가 크고 짧은 머리에 눈매가 매서웠다. 까무잡잡한 피부로 보아 현장에서 유기견을 구조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듯했다. 뭔가 내가 예상한 온화하고 부드러운 활동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여자가 물었다.
“왜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가 우연히 쿠알라룸푸르에서 SNS에 신고된 콘텐츠를 검열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동물을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그게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면접 내내 내가 여자의 질문에 답하면 남자는 압박면접을 하려는 듯 내 말을 끊고 말꼬리를 잡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온화한 사람들과의 면접을 예상했던 나는 악덕 기업에서나 경험할 면접에 약간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 또한 면접의 일부인지 도망가라는 조상의 계시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가 신경이 안 쓰이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OO 씨는 단체에 들어와서 뭘 하고 싶어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 놨다. 면접을 준비하며 조사해 보니 일부 단체의 사건들로 비영리단체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데이터를 인용하며 단체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기부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수치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나의 말을 듣자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런 건 이미 하고 있어요!”
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의 얼굴이 더 매섭게 변했다. 여자도 질문을 멈춰 얼마간 카페의 배경 음악만이 흘렀다. 나는 면접 전에 단체의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한 번 훑었다. 단체에 대한 기사도 검색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언짢은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내가 놓친 정보가 있거나 이들이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거나. 뭐가 되었든 내가 떨어졌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면접은 얼마 안 가 끝났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나는 예상대로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나는 이후에도 다른 몇 개의 비영리단체에 지원하여 면접을 봤지만 마찬가지로 실망하곤 했다. 국제적인 단체이건 작은 단체이건 같았다. 어떤 환경 단체의 대표는 면접 도중에 전화를 받느라 10분을 넘게 면접실 밖으로 나가있었다. 어떤 면접관은 다른 지원자의 대답을 비꼬거나 무보수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연이은 실망에 비영리단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점차 안 좋아졌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선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은 서서히 무너졌다.
내가 비영리단체에 이력서를 보내는 것을 멈췄을 때였다. 나는 뉴스를 통해 내가 지원했던 동물보호단체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얼마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부 고발이 나왔다. 대표 주도로 적절한 입양 절차 없이 동물 수백 마리를 안락사했다는 것이다. 단체는 동물을 구조하기 전부터 이미 안락사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그 대상에는 임신한 강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락사 없는 동물 보호소로 알고 후원금을 낸 사람들은 분노했다.
논란은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나왔다. 후원금 횡령 및 유용 의혹이 제기되었다. 내부고발자 몇몇이 단체로부터 폭언, 감금, 협박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은 국회 앞에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공익신고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요구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저 무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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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연중에 선행을 하는 이들이 선하길 바랐다. 나는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인간을 밖에서 찾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거의 모든 활동가와 그런 사람들이 모인 비영리단체들은 어느 정도는 선으로 자신의 악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중 한 곳은 그 수준이 범죄가 될 정도로 심했던 거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나는 그들의 위선에 실망한다. 하지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에 자격을 부여한다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다. 위선자를 걸러내는 촘촘한 거름망에서 생존자를 바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문제를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고 고로 사회는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는 말처럼 선을 행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위선이란 구더기만큼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더 나은 세상을 내가 해야 할 것은 도덕적으로 결점 없는 조직과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우선 세상의 위선을 받아들여야 했다.
'흑선백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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