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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는 문득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뚫렸다는 뉴스를 보고 있는 지금이 왠지 그런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간의 나의 행적은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까? 시작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의 극복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혐오했다. 누군가 선한 일을 한다고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선을 입에 담을 뿐인 직장인이었다. 마지막은 사업에 이상주의를 섞은 실패였다.
지난 행적은 언제나 위선이라는 단어와 끈적하게 붙어있었다 나는, 그리고 세상은 위선적이라는, 다소 자명한 답을 몸소 도출해 내는 여정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트라우마는 치유되었나? 나는 세상의 고통받는 생명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나?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위선자에서 벗어났나? 나는 결과적으로 나는 세상의 아픔은 물론 자신의 아픔도 치유하지 못했다. 여전히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내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도저도 아닌 존재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전쟁에 반대하며 동물학대에 반대한다. 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내 몸을 온전히 불사르지 못한다.
나의 작은 에너지가 쓰이는 곳은 따로 있다. 나는 어떻게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고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한다. 올여름의 폭염이 얼마나 끔찍할지에 우울해한다. 어떻게 노년에 고독사 하지 않을지 등에 집중한다.
그럼에도 나는 작게 되뇐다. 언젠가는 무언가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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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위선에 빠진 나와 반대로 세상은 위선에서 벗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 가지 질문해 본다. 지난 백 년 간은 세상은 선의 시대였을까?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는 기록된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이는 전체 기간의 약 7.8%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수치는 인류의 역사는 평화, 조금 더 확장하면 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7.8%의 시기는 언제였을까? 듀런트에 따르면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처럼 패권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기간이었다. 지난 백 년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팍스 아메라카나에 살았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국제 질서는 인권, 평화, 인도주의 등을 표방했다. 과거 강대국들이 힘으로 해결했던 분쟁이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통해 규율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고 전 세계가 정말 평화의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미시간 대학교의 COW(Correlates of War) 프로젝트는 1816년부터 2009년까지의 전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분석 대상 기간인 약 20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해는 단 한 해도 없었다. 매년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어떤 형태의 전쟁이라도 발생했다.
혹자는 지난 100년을 악이 선으로 포장된 위선의 시대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그런 표현에 아무런 반감이 없다. 말 그대로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지구를 파괴했다. 평화를 외치는 동안 지구 어딘가에는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위선마저 없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부자연스럽고 짧았던 위선의 시대에는 종말의 커튼이 내려오고 있다. 이제 막의 주인공은 솔직한 악마이다. 미국 패권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더 이상 세계 경찰 노릇을 하지 않는 미국은 자국 우선을 외치며 파리 기후협정을 탈퇴한 지 오래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이 격화되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단계다. 일부 국가에서는 위선 없는 ‘솔직한’ 지도자들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지구 평균 온도는 1.5도를 넘어갔다. 어설픈 위선보다 솔직한 탐욕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 관점에서 특이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중이다.
인류가 위선에서 벗어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돼서야 나는 위선의 가치를 발견했는지 모른다. 그 위선조차 없을 때 세상은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을 가는 자동차와 같다. 위선의 시대에는 그 브레이크의 가치를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위선의 가치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으니까. 이제 나는 나의 가치를 안다. 그리고 위선적이었던 옛 세상의 가치도 안다.
확률적으로 위선의 시대가 다시 올 가능성은 낮다. 아마 나는 살면서 두 번째 위선의 시대를 보지 못하고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위선을 시대를 누렸던 한 명의 위선자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 시대의 가치를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위선 떠는 인간보다 솔직한 악마가 되는 게 밉지 않은 시대이다. 위선을 버린 인간은 스스로를 솔직한 악마라고 정의 내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경험을 빌어 말하고 싶었다. 악마도 가끔은 착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동안 '악마도 가끔은 착하고 싶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