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본주의, 가짜 자본주의-4

by 흑선백지

1

8일째가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오늘도 쾌청했다. 나는 30분 후에 있을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을 먹자마자 호텔 밖으로 나왔다. 도시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넘어가자 호텔 주변의 길거리와 이따금 코를 때리는 대마 냄새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종의 직장인들과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한 백인 노숙자에게 시선이 갔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음에도 코끼리처럼 큰 그 남자의 덩치가 눈에 띄었다. 그는 몸을 움츠리게 되는 날씨 때문에 얇은 패딩을 걸친 사람들 사이에서 다 해진 하얀색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있었다. 통나무처럼 굵은 다리의 남자는 자신의 육중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뭉툭한 손으로 쓰레기통을 뒤졌다. 반면 그의 뒤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의 창가에서는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흘러나왔으며 얼핏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는 샌프란시스코에 일주일 넘게 있었던 나에게는 특별한 장면이 아니었다. 나는 잠시 그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거두고 서둘러 세미나가 열리는 강연장으로 걸어갔다. 의자가 바둑판처럼 놓인 넓은 공간에 회사의 직원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세미나의 첫 번째 일정으로는 초청연사와의 대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꽤 성공적인 여행 서비스 앱을 만든 CEO였다. 우리 대표의 소개에 맞춰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들어오자 회사 직원들은 박수를 쳤다. 갈색 머리의 젊은 백인 남자는 교단의 의자에 앉아 자신이 어떻게 성공적인 사업 아이템을 찾아 투자 유치에 성공했으며 일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해 우리 대표와 이야기했다. 여느 실리콘밸리의 창업자처럼 확신에 찬 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금맥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말하는 골드러시의 사업가 같았다. 창업하여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부를 쥔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신화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자연히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청중은 미소를 띠며 조명 아래 강연자의 말에 경청했다. 강연장은 마치 목사가 설교를 하는 교회 예배당처럼 경건하기까지 했다.


“기업의 본질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좀 전에 지나쳤던 노숙자가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성공한 창업가가 말하는 ‘세상의 문제’와 ‘가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골드러시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에게 두 단어는 돈과 우선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고로 그에게는 지금 강연장 밖의 길바닥에 누워있는 원주민들보다 돈 있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무대에 적합한 사람이었고 덕분에 부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지혜를 설파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리석게도 ‘세상의 문제’와 ‘가치’를 자꾸 윤리와 도덕과 연결 지었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주제넘게도 황금을 찾으러 모인 자리에서 희생되는 원주민들의 억울함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자신이 세상의 문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덕성과 비도덕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바꾸기 위해 수년간 연기를 했다. 세상의 문제보단 내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했으며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회사 생활에서 오는 번아웃을 견뎌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 사람을 따라 억지로 입은 할로윈 의상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부자연스러운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내가 자본주의라는 전쟁터에서 성공한 이의 말과 이 풍요로운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억누르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CEO가 이룬 부와 성장하는 회사의 대표라는 성과는 때때로 탐나는 것이었지만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야 했다. 실험은 끝났다.


10일간의 워크숍 일정이 끝난 후 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이전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영어 회화를 배워서 인생을 바꾸라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배포했다.


그렇게 두세 달이 흘렀다. 평소처럼 출근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지사장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단둘이 있는 방에서 그녀는 지금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고 짐을 정리하여 나가달라고 말했다. 느닷없는 미국식 해고 통보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나를 해고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뱃속에서 끓어올랐다. 하지만 뜨거움은 이내 가라앉았다. 나를 해고하는 이유는 회사의 경영상황이 악화되서이든, 회사가 나의 실적에 만족하지 못해서이든,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나의 모습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나에게 무의미했다. 나는 내가 이곳에 맞는 부품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이 자리에 적합한 사람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었다.


나는 회의실에서 나와 동료들과 간단한 작별 인사를 한 후 물건들을 챙겨 회사 건물을 나왔다. 회사에서 잘린 날 치고는 꽤 화창한 날이었다. 거리에는 아직도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물고기 떼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홀로 그 흐름을 거슬러 내려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회사에서 갓 버려진 부품에게 오전 10시의 지하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쓰임 없는 인간의 집합소 같았다. 주름 가득한 노인들은 쓰임이 다했고 무표정한 청년들은 앞으로 자신이 쓰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쓰임이 없어진 인간 중 하나로서 문득 이 자본주의라는 세계에서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일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어중간한 도덕성을 가진 위선자가 누울 공간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흔들거리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문득 그것이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들과 겹치며 나는 낯익은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정심과 연민이 사라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태로움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옮겼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질리는 없었다. 문득, 나는 이 자본주의라는 수레바퀴가 언제까지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흑선백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대한 솔직한 의견(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이나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전 20화진짜 자본주의, 가짜 자본주의-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