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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닌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본사 주관으로 워크숍이 예정되었다. 약 10일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전 지사의 직원을 위한 교육과 팀워크 강화 등이 예정되었다. 나와 한국지사의 직원들은 10월 중순쯤에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는 1776년, 스페인 수도사들이 이 지역에 가톨릭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딴 선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미국 서쪽 끝자락의 이 작은 시골 마을은 1850년대 골드러시를 겪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 북부에 금이 있다는 소식이 황금을 노리는 이들 사이에 퍼졌다. 이들이 금광으로 가는 주요 항구였던 마을에 몰려들었다. 미국과 세계 각지에서 30만 명이 쏠려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천 명에서 25,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은행, 상점, 호텔 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반면, 금을 캐지 않고도 채굴자들에게 필요한 삽, 곡괭이, 청바지 등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느 쪽이 되었던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위험을 감수하며 부의 기회를 포착하고 선점하는 것, 그것이 골드러시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퍼져있던 정신이었다.
골드러시의 정신은 오늘날 스타트업 마인드로 샌프란시스코에 이어지고 있다. 200년 전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던 이유가 황금이었다면 이제는 투자와 창업이다. 벤처캐피털과 엔젤투자자들이 밀집한 샌프란시스코는 창업가들이 돈을 구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도시 곳곳에는 삽과 곡괭이 대신 로봇, AI,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로 무장한 야심가들이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얻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구글, 오픈 AI, 메타, 에어비앤비 등은 이러한 기회를 잡아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창업에 뜻이 없다 하더라도 직장인이라면 이러한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한 번쯤 꿈꿀 것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아름답고 자유로운 캠퍼스에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것. 과거에도 그랬듯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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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의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환한 하늘에 감탄할 새도 없이 나와 다른 직원들은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 회사가 잡아준 시내 중심의 호텔로 이동했다. 황갈색 능선을 따라 자리 잡은 저층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시내 중심으로 파고들수록 고층 빌딩과 상업용 빌딩들이 점점 더 택시를 조여왔다. 호텔에 도착한 후 우리는 빡빡한 워크숍 일정에 따라 캐리어만 놓고 본사의 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로비로 모였다.
호텔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오자마자 시원하고 건조한 공기에 시차로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깨어나는 것 같았다. 10월의 샌프란시스코는 유리로 된 푸른 고층 빌딩 사이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황금처럼 반짝이는 햇빛에 양지와 응달이 선명히 대비되었다. 적갈 색의 벽돌 건물들이 밀집한 길거리는 깔끔하고 부유한 분위기를 풍겼다. 간혹 야릇하면서도 쾨쾨한 냄새에 정신이 어지러웠는데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대마초 냄새였다.
우리는 본사로 향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빠르게 걷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 사이로, 맨발의 노숙자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인도의 회색 콘크리트보다 더 검은 발바닥을 드러낸 채 길 구석에 누워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이 갑자기 내지르는 괴성과 예측할 수 없는 기행에 익숙지 않던 우리는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본사에 도착하자 직원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회사 내부를 소개한 다음 앞으로의 일정과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주었다. 특히 우리에게 안전을 위해 밤늦게 외출을 자제하라고 말하면서 이 도시에서 피해야 할 곳들을 알려주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우범지역은 특이하게도 낮과 밤의 격차가 컸다. 낮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경찰 그리고 관광객이 많아 안전했지만 상점과 사무실이 문을 닫아 거리가 한산한 야밤의 거리에는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들의 범죄가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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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당시 황금에 혈안이 되어 몰려든 인간 군상들은 샌프란시스코에 경제적 부흥과 함께 폭력을 가져왔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도시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19세기의 샌프란시스코는 여느 미국 도시들처럼 무법지대였다. 보안관이나 경찰조차 거의 없어 자경단이 치안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금에 대한 탐욕은 도시 전체에 피를 불렀다. 황금 매장지를 놓고 살인, 강도, 사기, 폭력 사건이 급증했다. 골드러시는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원주민들에게 재앙이었다. 광부들이 금광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원주민 학살을 지원했으며 원주민을 노예로 삼는 것을 합법화했다. 원주민에 대한 백인 정착민들이 조직적인 학살과 강제 이주 및 노동, 납치, 강간 등이 자행된 결과 1848년 150,000명이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원주민은 1870년 16,000명으로 줄었다.
원주민 학살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 샌프란시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음에도 이곳에 여전히 자신들의 터전을 잃고 배회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샌프란시코의 노숙자들은 외부인의 물질적인 욕망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과거의 원주민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해있다.
길바닥에서 생활하는 이들 대부분은 원래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20세기의 원주민들이었다. 문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빅 테크 기업과 투자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유입되자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달랐다. 고소득 기술자들이 몰려들자 부동산 가격과 생활비가 급격히 상승했다. 원래 도시에 거주하던 저소득층과 중산층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도시 밖으로 밀려나거나 노숙자로 전락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황금에 눈이 멀어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에게 의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과거와는 달랐다. 하지만 제삼자의 물질적 욕망으로 인해 누군가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퇴근 시간이 되자 우리는 모든 지사의 직원들이 모이기로 한 멕시코 식당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컴컴해지자 본사 직원의 말대로 직장인들은 온데간데없고 노숙자들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우리는 적진에서 탈출하는 포로들처럼 그들이 점령한 구역들을 이리저리 피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식당에 들어가 지정된 자리에 앉자 무사히 도착한 우리에게 포상하듯 식탁에 많은 양의 음식들이 차려졌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각 지사의 직원들은 웃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각양각색의 인종들 속에서 나는 미국에 왔음을 실감함과 동시에 못할 불편함을 느꼈다. 이는 시차로 인한 피로나 낯선 음식 때문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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