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첫날부터 도시에는 뭔지 모를 흥분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3일 후에 있을 할로윈에 대한 기대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같은 축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뉴욕, 보스턴 같은 동부 사람들에게 할로윈은 주로 어린이를 위한 행사로 가족 단위의 모임이 많았다. 반면 LA, 라스베이거스 같은 서부에서 할로윈은 어린이 못지않게 어른이 들뜨는 축제였다. 샌프란시스코도 예외가 아니었다. 10월 31일이 가까워질수록 도시 곳곳에서는 할로윈 장식들이 늘어났고 각양각색의 의상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축제 당일에 코스튬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살아생전 그런 행사에 관심 없었지만 분위기도 못 맞추는 동양인으로 보이고 싶진 않았기에 축제 날 입을 의상을 알아보기로 했다.
퇴근 후에 회사 근처의 파티 용품 매장을 방문했다. 날이 어두워졌음에도 매장에 길게 줄을 선 어른들을 보고 나서야 할로윈이 이 도시에서는 애들 장난이 아님을 실감했다. 매장 안을 가득 채운, 딱 봐도 허접하고 유치한 제품들은 하룻밤의 유희를 위해 한번 쓰고 버려질 것치고는 터무니없이 비쌌으며 지나치게 많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려고 줄을 서는 것을 보면 그것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인 셈이었다. 비슷한 매장을 몇 군데 돌아다녔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기에 눈앞의 대형마트에 들어가서 아무 물건이나 집어 들기로 했다.
자동문을 지나 들어간 마트 내부는 폭도들이 지나간 현장처럼 혼란스러웠다. 널찍한 진열 대에 있어야 할 제품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 희귀한 물건이 있었던지 덩치가 산만한 어른들은 하나밖에 안 남은 물건을 자기가 가져가겠다며 싸우고 있었다. 물건을 훔치는 이들도 몇 보였는데 점원들은 자포자기한 듯 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바닥에 있는 물건 중 하나를 집어 계산대로 걸어갔다. 계산대 직원은 정상적인 구매 절차를 따르는 나의 모습이 다소 신기하다는 듯한 눈치였지만 이내 심드렁한 태도로 제품의 바코드를 찍었다. 나는 구매한 물건을 한 손에 들고 밖으로 나오면서 마트 입구 옆에서 누워있는 노숙자를 보았다. 덥수룩한 수염의 그는 사람들이 구매하자마자 버린 제품의 포장 박스에 머리를 베고 있었다.
이때 나는 이곳에서 줄곧 느꼈던 미묘한 이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이 도시가 상징하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뒤틀림에서 오는 메스꺼움이었다.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생산과 소비의 무한 반복 속에서 도덕성이 설자리는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바퀴는 계속해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나도 그 바퀴를 돌리는 부품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 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곱씹으며 회사가 잡아준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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