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왕국은-1

by 흑선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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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실패는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과정이다. 화살이 과녁을 빗나감은 다음에 시위를 당길 때 적중할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나는 몇 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낭비하지 말아야 했다. 나라는 위선자는 세상의 문제라는 줄 위에서 끝없이 외줄을 타야 했다. 뒤틀린 세상에서 고통받는 생명들에 집착하든 무관심하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나는 균형을 잃고 추락할 것이었고 이는 지난 몇 년간의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내가 영리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아주 약간이라도 내가 하는 일이 공익적이길 원했다. 이번에는 배양육이나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소셜벤처에만 이력서를 제출했다. 조건에 부합하는 소수의 회사들에 이력서를 돌리는 데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기다림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나는 낮에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밤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며 지난한 구직활동을 이어갔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간간히 오는 불합격 메일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려줬다.


땅이 단단하게 언 겨울, 한 회사로부터 서류 합격 메일이 왔다. 그곳은 배양육 기술을 연구하는 곳으로 지원했던 회사들 중에서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실제로는 어떻든 간에 기업 리뷰 사이트에서 근무자들의 후기도 좋았고(그마저도 안 좋은 회사도 많기에) 회사의 연구도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공익적인 일을 한다고 해서 열정페이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실제 연봉도 일반 회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회사는 면접 날짜를 잡자고 했다. 나는 일주일 뒤가 좋다고 답한 뒤 바로 면접을 준비했다.


어머니의 오른손이 부러진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어머니는 아스팔트 위에 도사리던 빙판들을 피하다 어이없게도 눈 덮인 잔디밭에서 미끄러졌다. 몸이 앞으로 넘어가던 노모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얼굴을 막았다. 언 땅에 부딪힌 손에 충격이 퍼졌다. 골밀도 낮은 뼈는 쉬이 부러졌다. 조각난 뼈를 잇기 위해선 손목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재주가 없는 남편 대신 아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켰고 이틀 후 오른손에 석고 붕대를 감은 상태로 집에 데려왔다. 어머니는 병원에서는 처방한 약을 투약할 때마다 몸이 휘어졌다. 나는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과 집을 계속 오가며 살림을 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넘어갔다.


점심 식사를 마친 어머니를 침대로 데려가던 어느 날, 무언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문득 면접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달력앱을 켰다.


불안한 느낌은 적중했다. 10분 후가 면접이었다. 면접 장소는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는 잠시 한눈 판 아이 몰래 아득한 창공으로 올라가는 풍선처럼 내 손을 떠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다시 잡아야 했지만 어째서였을까? 나는 맥이 풀려버렸다.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지쳐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계속된 이 구직이라는 지난한 행위에 탈진해 버렸다. 수많은 채용공고를 검색하고 밤새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무례한 면접관의 질문 끝에 받는 불합격 메일들. 사회초년생 때는 회사 생활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알게 된 중고직장인의 열정은 하얗게 타버린 재처럼 흩어졌다. 나는 면접관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면접에 못 가게 되었다고. 나보다 나은 인재를 찾길 바란다고.


천천히 타자를 두드리던 나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욕망이 샘솟고 있었다. 남의 왕국에 거절당한 나는 나만의 왕국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2

남이 세운 왕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것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기존 사회에 불만을 품은 개인이나 집단이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이상향을 세우는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난다. 19세기의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자연과 단절된 도시 문명을 벗어나 월든 호수에 혼자만의 이상향을 만들었다. 그는 호수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농사와 수공으로 자급자족하며 소비와 문명의 편리를 거부하는 삶을 살았다. 1968년 인도 남부에 건설된 국제 공동체 오로빌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국가, 종교, 정치, 돈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프루트랜즈는 이상향을 만드는 시도 중에서도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1843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시작된 이 공동체는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과 찰스 레인이라는 두 초월주의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미국 출신의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올컷은 도덕적 완전성과 순수한 삶을 꿈꿨다. 한편 영국 출신의 사회개혁가인 레인은 비폭력·금욕·무소유의 삶을 지향했다. 둘은 출신과 직업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많았다. 노예제가 극에 달하고 여성의 권리가 가장 억압받던 시대에 살고 있었음에도 이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 채식주의자였다. 또한 물질문명에 비판적이어서 인간은 물질이 아닌 정신과 도덕을 통해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 산업화, 상업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어졌다. ‘자연 속에서의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둘은 1843년 5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하버드 근처에 축구장 50개 크기의 농지를 1800달러에 구매했다. 한 달 후인 6월 1일, 두 사람의 가족들과 소수의 추종자들은 농장으로 이주했다. 그중에는 올컷의 딸인 루이자 메이 올컷도 있었는데 그녀는 후에 소설 ‘작은 아씨들’을 쓴다. 14명의 이상주의자들은 자연적이고 순수한 삶에 대한 이상을 담아 자신들이 발 디딘 땅을 프루트랜즈(Fruitlands)라 명명했다.


내가 면접에 늦었던 순간 느꼈던 것은 200여 년 전 프루트랜드 주민들의 열망과 같았다. 그것은 남이 만든 왕국이 아닌, 나만의 왕국을 향한 열망이었다. 나는 자신과 결이 맞지 않는 사회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내 힘으로 서길 원했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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