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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 백 에이커의 땅을 인수하여 이를 인간의 소유 상태에서 해방시켰다”
올컷과 레인은 땅을 구매한 직후인 6월 10일, 초월주의 잡지인 The Dial에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만큼 프루트랜즈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지향했고 이는 공동체의 규칙에도 적용되었다. 둘은 생활하면서 점진적으로 규칙들을 만들어갔다. 그것들은 극도로 엄격했고 구체적이었다.
동물 노동이 금지되었으며 모든 것은 인간의 육체노동으로 수행되어야 했다. 구원은 완전 채식을 해야 했는데 뿌리채소도 하층의 본성을 상징한다고 하여 금지되었다. 목욕은 냉수로만 해야 했으며 성욕과 애정 표현도 억제되었다. 사유재산, 화폐, 그리고 외부 거래가 금지되었다.
나의 이상향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물론 프루트랜즈만큼 세세하고 엄격하진 않았지만 이는 꺾여선 안 될 브랜드의 정체성이었다.
1. 사회문제에 대한 극단적 접근을 거부한다. 문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대중에 대한 설득이며 사회문제를 알리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중이 불쾌함이나 거부감을 갖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제품 디자인, 마케팅 문구 등 모든 부분에 이를 적용한다.
2. 사회적 메시지의 확산이라는 제품의 본래적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다. 단순히 옷 파는 회사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 옷은 이미 차고 넘친다.
3. 제품 제작 및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한다
4. 순수익의 5%를 기부한다
나는 규칙의 제정자이자 이행자가 되어 브랜드를 발전시켰다. 일반인을 위한 디자인 수업을 듣고 1:1 코칭을 받으며 제품에 인쇄할 디자인 콘셉트를 잡아나갔다. 직접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영문으로 브랜드 소개문을 올렸으며 제품의 수를 점차 늘렸다. 이상향을 가꾸는 일은 복잡했지만 나름 보람이 있었다.
나는 사업을 파고들수록 그것의 뿌리인 POD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POD 업체는 회수 및 교환 업무까지 처리해주지 않았다. 고객이 잘못 주문하거나 교환을 원해도 회수할 방법이 없었다. 또한 인쇄할 수 있는 면적이 좁고 한정적이라 디자인에 차별점을 주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친환경적인 소재를 선택할수록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나의 제품은 경쟁사의 제품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비쌌다.
하지만 이 때는 이것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위험으로 보였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사업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렇게 몇 달 동안 애를 쓴 결과 내 눈에 꽤나 그럴듯한 의류 쇼핑몰이 만들어졌다. 나는 SNS에 제품을 홍보하는 글을 꾸준히 올리며 구매 알람이 뜨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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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트랜즈의 모습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초월주의의 야생 귀리’에서 엿볼 수 있다. 공동체는 지속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그녀의 아버지 브론슨과 레인이 실질적인 노동보다는 외부 강연이나 철학적 토론에 집중한 나머지 생계유지에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했다. 동물 노동과 비료 사용을 금지하고 상업 활동도 지양하다 보니 늘 식량이 모자랐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일부 구성원들은 규칙을 어겨 추방되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올컷과 레인은 소를 도입하여 농사에 동물 노동을 일부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프루트랜즈처럼 나의 영토에 풍요는 없었다. 1년 동안 쇼핑몰을 가꾸었지만 몇몇 지인을 제외하면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제품에 차별점을 주기 어려우니 곧 광고비 경쟁으로 이어졌다. 돈을 많이 쓸수록 이기는 싸움에서 평범한 1인 사업자가 이기기는 어려웠다. 나에게는 그만한 자본이 없었다.
판매가 부진해서일까? 머릿속에 회의감이 몰려들었다. 애초에 환경을 생각한다면 생산 자체를 안 하는 게 최선 아닌가? 이미 수많은 친환경 티셔츠가 있는데 굳이 나의 것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그냥 POD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지 나만의 것을 만든 것이 아니지 않나? 이상적이었던 사업 아이템은 어느새 허점 투성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쇼핑몰을 1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프루트랜즈는 설립 7개월 만에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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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왕국의 멸망은 시작부터 예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자신만의 이상향을 원했던 이상주의들은 도덕적으로 순수한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다 하더라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왕국은 다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주의자는 건국과 멸국의 과정을 통해 배울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로 과거의 실수를 배워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멸국의 아픔을 겪은 건국자는 선택해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또 다른 나라를 세울 것인지, 다른 나라의 시민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방랑자가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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