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白手)의 무게-2

by 흑선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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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더 구할 수도 있었을 거야.

어쩌면 더 살릴 수 있었는지도 몰라.

만약 내가…

좀 더 구해낼 수 있었어.


슈테른:

사장님 덕분에 1천1백 명이 살 수 있었어요. 보세요.


쉰들러:

내가 돈을 좀 더 벌었다면…

너무 많은 돈을 낭비했어.

자넨 상상할 수도 없을 거야.


슈테른:

사장님 덕분에 후손이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쉰들러:

충분히 하지 못했어.


슈테른:

그 이상으로 하셨어요.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오스카 쉰들러는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주방 용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다. 유대인 노동자를 저렴하게 고용하고, 고위 나치 인사들과의 인맥을 활용해 군수 물자 계약을 따내며 큰 이익을 얻었다. 공장은 전쟁 중 군용품을 생산하며 더욱 번창했다. 사치스러운 파티가 계속되었다.


영화 중반부부터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나치 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고, 유대인 노동자들을 자신의 공장으로 이송시켜 음식과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 수십억 원을 쓴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나치 당원으로 등록되어 있던 그는 피신하기 전 자신이 구한 1100명이 넘는 유대인의 배웅을 받는다. 자신을 둘러싼 군중을 돌아보던 이 빈털터리 독일인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별의 아쉬움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돈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회한이었다.


효율적 이타주의의 창시자 피터 싱어는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려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하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이 비영리단체에 기부할 수 있고 그 결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린스턴대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한 매트 와이거는 최우수 논문상을 받고 졸업한 능력 있는 학생이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는 미래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뉴욕의 금융인이 되어 비영리단체에 벌써 수억 원을 기부하고도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선행에도 빈부격차가 있는 셈이다.


쉰들러의 이야기와 피터 싱어의 주장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일단 돈을 벌어라. 그래야 선행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라는 명분을 앞세울 때 돈을 버는 방법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러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직업의 공익성이 강해질수록 종사자의 수익은 주는 경향 때문이다. 세계 100대 부자 목록에서 공익적인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의 비중은 극히 낮다. 대부분 기술, 금융, 패션 등으로 부를 쌓았으며 이로 인해 환경 파괴, 불법적인 근로 환경, 독점, 탈세 등의 문제들이 발생했다. 부자들의 공익적인 활동은 주로 부를 축적한 이후에 시작되곤 한다(이러한 활동의 진짜 목적은 사회문제 해결보다는 세금 혜택 등에 있는 경우도 많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인권에 무관심하던 시기의 쉰들러도 유대인 강제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쉰들러 공장의 유대인들은 그 시기의 여느 유대인들처럼 인간적인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만약 쉰들러가 처음부터 인권을 중시해서 도덕적인 일만 했다면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할 정도의 부자가 될 확률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즉 유대인의 희생을 통해 유대인을 구한 것이었다.


다행이었던 건 건 쉰들러가 희생시킨 유대인보다 구한 유대인의 수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내가 환경단체에 더 많은 돈을 기부하기 위해 사업을 구상 중이다. 평소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던 나는 해외여행을 도와주는 앱을 만들었고 노력과 운이 합쳐져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큰 부자가 된 나는 막대한 금액을 환경단체에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많은 나의 고객들이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나는 환경을 파괴하며 번 돈을 환경을 보호하는데 쓰고 있었다. 내 사업이 세상에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의 합이 0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나의 사업이 배출한 탄소가 나의 기부금으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의 문제를 일으켰다면 나는 그 사업을 지속해야 할까?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사업을 유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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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먹고살 수 있게 된 다음에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상태에서 남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같이 침몰하는 거라고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내 귀를 틀어막았지만 점차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취업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재취업에 성공할 확률은 낮아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머리는 윤기를 잃고 군데군데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내가 올려다보던 아버지는 허리가 굽어 키가 나보다 작아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자신의 정의감에 취해 부모의 등골을 빼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부모를 잘 만난 덕에 당장 아무 데나 취업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고 매일 수십 명이 고독사로 사망하는 이 나라에서 생존하기에 내가 가진 것은 부족해 보였다. 다른 또래처럼 수명과 함께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은 느는 반면 은퇴 시기는 빨라져 인생 전체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줄고 있었다. 안락한 노년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결국 나는 사회 문제와 아무런 관련 없는 회사들에 지원했고 한 마케팅 회사에 운 좋게 합격했다. 그곳은 고객사의 웹사이트가 네이버나 구글의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상위에 노출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나는 마케터로 일하게 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었다면 취업이 되었다는 사실에 나름 기뻐했겠지만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건 내가 들어간 회사가 급여가 대기업에 못 미치는 이름 없는 곳이어서 만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업무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고객사의 제품을 한 칸이라도 위에 노출시키는 것이 나의 일이었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 마냥 나와 동료들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우리는 마치 인류를 달에 보내기 위해 모인 나사의 과학자들처럼 고객사가 만든 여행 가방이나 커피 머신이 온라인 공간에서 소비자들에게 더 잘 노출되도록 밤늦게까지 일했다. 그러한 노력과는 반대로 나는 때때로 허무함을 느꼈다. 출근길에 이 나라의 자살률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거나 담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강아지들이 강제로 담배연기를 마시는 실험이 진행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날이면 내가 퇴근 후 집에서까지 매달리던 업무가, 이 회사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그 일로 인해 내가 월급을 받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며 경제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회사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맡은 일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것은 분명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뇌는 여전히 배가 불렀었다. 오로지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도록 나를 몰아붙일 거액의 대출금도 책임져야 할 가족도 없어서일까? 재산을 불리고 싶은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지배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출근이 반복될수록 회사에서의 나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나는 성실한 직업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를 나온다고 해서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적인 직업을 찾는다는 이유로 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버텨야 했다. 그 결과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때때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취감과 그래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다. 번아웃이 몇 번씩 왔지만 그때마다 억지스럽게라도 내 업무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발버둥 쳤다. 반면 집에 돌아온 후에는 몸이 무거워 가만히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했다. 기후 위기, 동물권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은 점차 뒤로 밀려났다.


일을 하면서 나의 하얀 손이 변할수록 나의 직업관도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면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던 나의 만족감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세상에 미치는 변화는 미미할 것이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악화될 가능성은 낮았다. 나의 선택은 나의 세계에서만 중요했지 세상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의미라면 이상적인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나의 환상은 일생일대의 과업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이상적인 직업을 찾는 것은 흐르는 강물의 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하려는 찰나에 강물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나는 영원히 강물의 현재를 사진에 담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기에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이나 직업 등의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특정한 순간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은지. 변화무쌍한 내면에서 고정된 나를 포착하려는 작업이 운 좋게 성공한다면 개인은 직장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에 실패해 인생의 막대한 시간을 괴로움에 시달린다. 과거의 나는 분명 이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현재의 나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다. 고로 일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과정이다.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을 알게 된다. 그 또한 시간이 흐르면 변할지라도.


나는 자신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하기로 했다.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나의 관심이 앞으로 변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순간의 신기루 같은 것인지. 만약 후자라면 고통받는 무고한 생명들에 집착하는 지금의 나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내가 시간 앞에 스러졌듯 지금의 나 또한 그럴 것이었고 또 새로운 내가 일어설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얼마 동안 속세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직업인을 연기해 보기로 했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눈앞의 일을 하고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통해 회사에서 버틸 힘을 얻으며 어떻게 하면 인력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지에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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