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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꼬마 Nov 17. 2023

6년 만에 이혼 고백하게 되어서

조카한테 감사한 날

날씨가 추워지니 저녁 8시 반 밖에 안되었는데도 동네 공원에 사람이 없다. 여름에는 밤 10시가 넘어서도 트랙을 걷거나 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곳이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조금 무서워졌다. 두리번거리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뛰면서 옆을 지나갔다.

'이 밤에 참 열심히 뛰네.'

뛰는 걸 싫어하는 나는 그를 보며 잠깐 감탄하고 내 갈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이 갑자기 뛰는 걸 멈추고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조카 녀석이다.

와 C! 진짜 놀랬다.


친 언니네가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 중1짜리 조카 녀석이  저녁에 치킨 먹고 살 뺀다고 운동하러 나온 것이다.

176cm짜리 시커먼 녀석이 오밤중에 돌진해서 심장이 내려앉는 듯 놀랐으나 피붙이 조카 녀석인 걸 확인하고는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


얼마 전 믿을만한 정보원으로부터 그 녀석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너 여친 있어?"

다짜고짜 물어봤다.


"어.. 음.. 어.." 웃으며 어물쩍 넘어가는 걸 보니 있긴 있나 보다.


그러던 중에 내 남친한테 전화가 와서 잠깐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조카가 물어본다.

"누구예요?"

"어.. 음..어.."

나도 조카를 따라 해본다.


어쩌면 지금이다 싶어서 말을 꺼냈다.

"이모가 사실 너한테 그동안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말야. 엄마한테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말야. 너가 이모 마음을 지켜주려고 했는지 어느샌가부터 안 보이는 이모부를 애써 찾거나 근황을 묻지 않더라고. 너도 이미 대충 알고는 있었겠지만 이모랑 이모부는 서로 갈길이 달라서 6년 전에 이혼했어. 그 뒤로 이모는 연애도 하고 이모 삶 살면서 그렇게 살아. 아까 전화 온 분은 이모 남자친구야. 그동안 말 못 해서 미안하고, 이모를 배려해 줘서 고마워."


형부를 닮아서 말수가 적고 성품이 착한 조카 녀석은 아무 말이 없다. 쫘식...


이혼할 땐 잼민이 초딩1학년이었는데 어느새 훌쩍 다 커서 이런저런 말도 할 수 있게 되고.


한 시간쯤 같이 공원을 돌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걔네 엄마랑 내 엄마한테 보낼 인증샷 찍고 각자 제 갈길을 갔다.

내가 좀 건조한 사람이라 조카바보는 아니지만 하나밖에 없는 조카 녀석한테 살갑게 못해주고, 아직도 학비를 벌어야 해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지원을 못해주는 게 늘 미안한데 우리 조카는 그 사이 계속 자라 가고 있다.


그래도 조카가 성장해 감에 따라 나도 이모로서 조카를 대하는 모습을 달리 해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조카한테도 하나밖에 없는 이모인데, 더 멋지고 어른다운 어른, 친구 같은 이모가 되어야겠다!!

언니랑 내가 청소년, 청년기 때 스스럼없이 엄빠한테 남친들을 데리고 와서 소개했던 것처럼

나도 울 조카가 스스럼없이 여친 자랑 할 수 있는 이모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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