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이어진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갤러리에서 거리의 벽화까지

by 흑진주

여행지에서 갤러리를 찾는 건 그 도시의 문화를 제대로 보고 싶어서다.

이름난 거장의 작품보다 그 땅의 흙을 밟고 자라며 평생 그 풍경을 응시해 온 화가들의 시선이 궁금하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그들의 붓질 안에는 도시의 진짜 얼굴이 담겨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는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당시 주요 전시는 레이먼드 매킨타이어였다. 크라이스트처치 태생이지만 이 땅의 좁은 미술계를 떠나 런던으로 간 화가.


전시실 벽에는 그의 말 한 구절이 크게 적혀 있었다.

"Heave a brick at the clock, smash the ornaments, boil the piano..."

(시계에 벽돌을 던져라, 장식품을 부숴라, 피아노를 끓여라)

전통에 반항하는 서슬 퍼런 선언이었다.

그의 그림은 마티스의 작품을 닮았다. 생전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사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인정받은 화가다.


옆 전시실에는 빌 서튼, 에드윈 템플 등 뉴질랜드 지역 화가들이 그린 평야와 설경 작품이 가득했다.

여행하며 스쳐 지나온 풍경들이었다. 선은 단순했고 묘사도 간결했다. 그런데 그 땅의 형태와 색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 풍경들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슬쩍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아츠 센터¹. 헤글리 공원 초입에 자리한 고딕 양식의 석조 건물군이다. 짙은 회색 돌과 하얀 장식의 대비가 오래된 유럽 건물을 연상시키고, 건물들은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대학이 떠난 자리에 갤러리, 공방, 상점들이 들어섰고, 지금도 예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2011년 지진²으로 크라이스트처치 도심이 크게 무너졌었다고 한다.

아트 갤러리는 지진을 버텨냈고, 아츠 센터는 심하게 손상됐다가 복원 공사를 거쳐 다시 살아났다.

도시는 그렇게 예술을 중심으로 다시 이어졌고, 그 사이로 도심 곳곳에는 스트리트 아트 벽화들이 자리하게 되었다.³ 그런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서 크라이스트처치는 예술의 도시로 불리게 되었다.


'거리 벽화에 대해서 미리 알았다면 더 눈여겨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 차 한 잔 하려니, 카페는 오후 4시에 이미 문을 닫았다.

나의 여정도,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되어가고 있다.


¹ 아츠 센터(The Arts Centre, Te Matatiki Toi Ora)는 1877년 캔터베리 칼리지 건물로 시작되었으며, 1975년 대학 이전 이후 1978년 Arts Centre Trust 설립과 함께 문화예술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https://www.artscentre.org.nz/about-us/history /https://my.christchurchcitylibraries.com/arts-centre-christchurch/)

² 2011년 2월 규모 6.3의 지진으로 185명이 사망하고 크라이스트처치 도심이 크게 붕괴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는 재난 대응 본부로 사용된 이후 건물 손상으로 인해 2015년까지 폐쇄되었으며, 아츠 센터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어 대규모 복원 공사를 거쳤다.

(https://en.wikipedia.org/wiki/2011_Christchurch_earthquake / https://christchurchartgallery.org.nz/about/building / https://www.rnz.co.nz/news/regional/292561/chch-art-gallery-reopens-after-five-years)

³ 지진 이후 크라이스트처치는 스트리트 아트를 통해 도시의 회복과 변화를 겪었으며, 도시 전역에 250점 이상의 거리 예술 작품과 도심에는 50개 이상의 대형 벽화가 조성되었다.

(https://www.christchurchnz.com/visit/things-to-do/get-inspired/celebrating-street-art-in-the-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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