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엄마 없는 아이의 안부를 묻는 걸까

걱정과 호기심, 그 애매한 경계에서

by Dear Mi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곤 한다.

초등학생 땐 같은 아파트, 중학교 땐 조금 옆 동네, 고등학교 땐 다른 구 친구들과도 함께 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성장을 함께 했던 얼굴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헤어짐을 결심한 적은 없지만, 다시 만날 약속도 하지 않은 채로.


내 친구들은 늘 조금씩 달랐다.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은 나이가 그랬던 듯, 철없고 발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말수가 적고, 저마다의 아픔을 품은 아이들이 곁에 많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성적과 순위에 목숨 거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성실했다가, 게을렀다가 하며 자랐다. 친구들의 기질에 나를 조금씩 맞추며, 나도 그 시절의 온도를 닮아갔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연락이 끊겼다. 다른 학교에 간 친구도 있었고, 같은 학교로 진학한 친구도 있었지만, 엄마가 없어진 비극적인 친구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없었다. 엄마 장례식장에 내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못 가게 했다고 들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슬픔은 공유하거나 위로받을 수 없다는 걸. 온전히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 남매는 그들에게 학창 시절 가까이 지내지 않아야 할 친구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졸업도 하기 전에 절교했던 걸 떠올리면, 그 판단이 아이들만의 선택이었을까 싶어진다. 물론 엄마를 잃은 뒤 내가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곁에 남아준 친구도 있었다.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엄마가 가정통신문을 챙기던 나이에, 아이들의 선택에 부모의 가르침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 사귀었던 친구들은 조금 컸던 탓인지, 엄마에게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말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 산 중턱에 있는 납골당은 가족들조차 자주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이라 실제로 함께 간 적은 없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같이 가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떠올려주고, 말로 꺼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건네진 마음에 오래 기대어 살았다.


중학교 이후의 친구들은 우리 엄마를 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엄마들 사이의 교류도 없었다. 학원 정보도, 진학 정보도, 생활 정보도 공유되지 않았다. 강남 8학군이라는 이름 안에서, 나는 아무 정보도 공유하지 못한 채 혼자 졸업했다. 묻지 않았고, 묻고 싶지도 않았다. 설명해야 할 이유가 생기는 순간, 나는 다시 '엄마가 없는 아이'가 되었으니까.


성인이 되어 다시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내가 몰랐던 세상을 전해 들었다. 그때 친구 엄마들의 모임이 있다고. 만나면 늘 자식 이야기로 시작해 자식 자랑으로 끝나는 게 레퍼토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가끔 내 이야기를 묻는다고 한다. "걔는 어떻게 지내?" 하고. 그 모임에서 유일하게 나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가, 그 질문을 그대로 내게 옮겨준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잘 살고 있다고 대신 전해준다고 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걸까. 항상 내 소식을 묻는다는 그 사람들은, 정작 내 기억 속에서는 나를 찾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아직도 그들끼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삶에서는 이미 학부모 모임, 친구 엄마, 친구 아빠 같은 말들은 사라져 있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없는 게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나는 그렇게 하나의 세계에서 조용히 밀려나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밀어낸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나만 다른 축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졌다. 누군가는 엄마의 네트워크 안에서 자랐고, 누군가는 그 바깥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 나는 후자였다.


그래서인지 나의 성장에도, 성적에도, 소위 말하는 성공에도 학창 시절은 큰 보탬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늘 주류의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었다. 같이 경쟁하면서도, 완전히 섞이지는 못한 채.


돌이켜보면, 학교는 나에게 배움의 장소이기 이전에 관찰의 공간이었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 어떤 슬픔은 보호받고, 어떤 슬픔이 외면당하는지. 그 모든 것을 겪으며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사람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의 나를 꽤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거리 덕분에 나만의 방식으로 청소년이 되었고, 성인이 되었다. 남들보다 방황했을지는 몰라도, 방향은 분명했다. 친구는 선택이지만, 상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선택하지 않은 일을 끌어안은 채 자랐고, 그 덕분에 일찍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그건 불행이었고, 동시에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른이 된 지금, 가족조차 놀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된 건지, 아니면 모두가 모르던 내 모습이 이제야 드러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사람은 특정 시기에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년기에도, 청소년기에도, 20대에도, 30대에도 사람은 계속 변한다.


그 시절의 외로움은 나를 불행하게만 만들지는 않았다. 관계의 이면을 보게 했고,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게 했으며, 동시에 누군가의 작은 배려를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게 했다. 엄마에게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말해주었던 친구처럼, 조심스럽게 건네진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를 잃은 아이로 자랐지만, 나는 그 상실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금 이른 나이에 세상을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한 발짝 비켜선 자리에서 본 풍경은, 때로는 쓸쓸했지만 동시에 선명했다. 그 선명함 덕분에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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