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평가하는 가장 쉬운 방식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교실과 교무실 청소를 학생들이 하던,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운 시스템 아래에서 나는 그날 당번이었다.
종례가 끝나 다른 친구들은 교실을 떠났고, 나와 동급생 둘이서 칠판을 닦고,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했다.
컨펌을 받아야 하교를 할 수 있었던 시스템. 우리는 1층 교무실까지 내려가 담임 선생님께 청소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3번이나 전했다. 그날따라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선생님은 알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한참을 올라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두 시간이 넘도록 하교를 못한 채 멍하니 복도와 교실을 오갔다.
마침내 올라온 담임은 별말 없이 교실을 대강 둘러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트집을 하나씩 주워 올렸다.
나는 말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다시 청소를 했다.
억울함보다 “언제 끝나지?”가 더 컸던 나이였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복도로 불러냈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너, 어머니 뭐 하시니?”
순간, 주변 소음이 다 사라진 느낌이었다.
고작 사흘 전, 학생 개별 상담 시간에
나는 떨리는 목으로 “어머니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했다.
3월이었고, 새 학기 초였고, 그 말이 선생님에게도 낯설었을 거라 잠시 이해해보려 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다시 말했다.
“저… 그제 말씀드렸는데요. 돌아가셨다고…”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가르침이라는 껍데기를 쓴 말 한 줄을 내뱉었다.
“그래, 네가 엄마가 없어서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세상이 아주 작게 ‘툭’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뭘 어떻게 해석해도 말이 안 되는 문장이었다.
내 청소가 조금 미흡했다면 알려주면 되는 일이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지도하면 되는 일이다.
근데 왜 그 선생님의 결론은 ‘엄마 없음’이었을까.
그날의 어떤 순간도 ‘엄마 부재’와 연결될 이유는 없었다.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낙인이었고, 교육이 아니라 공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 나에게 결핍을 본 게 아니라
결핍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미 정답처럼 들고 있었던 거다.
그 시절엔 그런 시선이 많았다.
어른들은 아이를 보기보다, 아이가 가진 배경을 먼저 들여다보는 데 익숙했다.
누군가 가진 환경은 그 사람의 성질이자 능력이 되었고, 부족함은 쉽게 가정 문제로 수렴됐다.
아이들은 갑자기 원인과 결과가 되어버렸고, 어른들은 설명할 필요도, 미안해할 이유도 없었다.
아이는 그냥 어른들의 세계관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배웠다.
세상에는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편견’부터 꺼내 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 편견은 말보다 빨리 사람을 다친 곳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에서 ‘어른’을 만드는 건 나이도 직함도 아니다.
누군가의 상처를 쉽게 줄여 말하지 않는 태도, 이유를 모를 때는 멈춰 생각하려는 마음, 이런 것들이 어른을 어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날 복도에서 선생님이 보여준 건 그 반대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시선의 높이에서 세상을 본다.
문제는, 그 시선의 높이가 누군가의 상처 위에 세워졌다는 걸 모르는 채 살아갈 때 생긴다.
그날 복도에서 던져진 말 한 줄은, 결국 선생님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사회가 길러낸 어떤 사고방식의 발화였다.
사람을 한 줄로 요약하고, 배경으로 해석하고, 결핍을 원인으로 연결하는 버릇.
그건 한 사람만의 언어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공기 속에서 자라난 문장이었다.
아이였던 나는 단지 그 문장의 끝에 서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역으로 이런 생각에 닿았다.
어른의 역할은 아이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상처를 자기 탓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게 아닐까.
말 한 문장, 표정 하나, 시선의 방향 하나가 한 아이의 자존감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어른은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
‘저 아이는 저 아이일 뿐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존중이 있었다면
아이였던 나의 흉터가 조금 덜 하지 않았을까.
사회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남기는 건 훈계나 평가가 아니라
한 인간을 온전한 존재로 바라봐주는 시선의 기억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하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오랫동안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란 결국, 그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하나의 얼굴일 뿐이다.
나는 언젠가 그 복도에서 들었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상처로가 아니라, 다시는 그런 언어를 누군가에게 향하지 않기 위한 내 쪽의 다짐으로.
그 다짐이 누군가의 균열을 막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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