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J, 나를 만드는 것들 - 7
어떤 시대는 노래 한 소절로 기억나고, 어떤 도시는 간판 하나로 떠오른다.
내 청춘은 카페의 소리와 빛으로 붙잡혔다.
유리문을 열 때 울리던 작은 벨 소리, 에스프레소가 추출될 때 공기를 가르던 얇은 실소리, 오후 네 시의 빛이 먼지 위에 흩날리며 만들어내던 장면들.
그 소리와 빛, 향과 그림자가 쌓여 나를 길렀다.
카페는 내게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곳, 다음을 상상하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연습하는 곳”이었다.
빙수 한 그릇에 시작된 무대
고등학교 시절, 내가 처음 카페라는 공간에 들어간 건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때는 커피 맛도 몰랐고,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카페에 들어간 이유는 딱 하나, 달달한 ‘오레오 빙수’였다.
학생회 활동이 끝나면 항상 친구들과 모였다.
중간고사 준비하느라, 축제 회의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데, 밤이 되면 결국 카페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그릇 위에 산처럼 쌓인 얼음.
팥과 떡, 연유와 초콜릿이 흘러내리고, 숟가락이 딱딱 부딪히던 소리.
한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면 세상의 무게가 잠시 사라졌다.
카페는 단순한 쉼터가 아니었다.
작은 회의실이자 놀이터, 그리고 미래를 떠드는 아지트였다.
“야, 이번 기말고사 어렵지 않았냐?”
“졸업하면 어디서 일하고 있을까?”
정해진 것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카페 안에서는 모든 상상이 가능해 보였다.
돌아보면, 내 청춘의 첫 장면은 그렇게 빙수 한 그릇 위에서 열리고 있었다.
청춘에 각인된 프랜차이즈 로고
그 시절 카페 풍경을 말할 때, 카페베네 얘기를 빼면 섭하다.
솔직히 지금은 다들 촌스럽다고 웃을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에겐 그 로고가 하나의 밈이었다.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이 끝날 때, 화면 하단에 번쩍 뜨던 카페베네 로고.
그리고 이어지는 BGM, "Cause you’re my love~."
엔딩 자막에 박히던 그 장면은 사실 하나의 집단 기억으로 성장했다.
드라마의 여운과 브랜드의 로고가 섞여버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크릿가든 길라임과 주원의 ‘거품 키스’.
그 한 장면 덕분에 전국 카페 메뉴판 위의 카푸치노 거품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나도 결국 처음으로 ‘커피’를 시킨 메뉴가 ‘캐러멜 마키아토’였다.
컵 위의 거품은 단순한 우유 거품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드라마였고, 그 커피 주문 하나가 나에겐 어른이 된다는 작은 '주문'이었다.
입술에 묻은 거품은 괜히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듯 들뜨게 했다.
빙수에서 커피로. 그 작은 전환 속에서, 어느 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나를 바꿔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환은 나를 성인으로 만들었다.
카페는 작은 스튜디오였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카페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됐다.
나는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고, 카페는 매일 새로운 무대였다.
눈 오는 날,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
벽에 붙은 엽서나 포스터.
그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게 콘텐츠였다.
찍고, 편집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공모전 서포터스 활동 보고서에도 붙였다.
보고서를 보는 사람은 대충 넘겼을지 몰라도,
나는 사진 속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
내가 만든 글과 이미지는 하나의 ‘작은 광고’, 동시에 ‘작은 공예’ 같았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 어딘가에서, 나는 무심히 훈련받고 있었던 셈이다.
돌아보면, 카페는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었다.
내가 놀면서, 실험하면서, 은근슬쩍 길러지고 있던 수많은 작업실이었다.
그땐 그냥 재미로 했지만, 사실은 몸이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담긴 것은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카페 구석자리에서 나는 감각을 단련하고 있었다.
지금 마케터로서 “이미지 한 장이 곧 메시지”라는 걸 몸으로 배운 것도, 그때 카페에서였다.
백색소음들의 합주
월
.
화
.
수
.
목
.
금
시간표 사이의 공강은 전부 공모전이었다.
하루에 세 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썼다.
다만, 공모전 준비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로 학교 스터디룸이 닫혀 있었다는 것.
유일하게 열려 있던 공간은 카페였다.
처음엔 불편했다. 시끄럽고, 낯선 사람들 속에서 집중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곧 알았다. 불편함은 집중의 또 다른 형태라는 걸.
노트북 팬 소음, 크루원의 키보드 타건, 매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재즈와 K-pop.
그 소리들이 겹쳐 하나의 백색소음이 됐다.
커피머신이 ‘칙’ 하고 스팀을 뿜을 때, 대화가 톤업됐다가 잠시 침묵하는 순간.
그게 신호탄이 되어 아이디어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 사소한 디테일 하나가 우리의 아이디어를 미묘하게 바꿔놓았다.'
어느 날은 창가 햇살로 만들어진 그림자가 발표 자료의 표지가 되기도 했다.
카페는 그냥 공간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영감을 흘려주는 촉매제였다.
작업이 끝나면 테이블 위에는 빈 컵만 남았다.
그 컵의 개수만큼 버려진 아이디어와 살아남은 내용이 쌓였다.
그 흔적들이 다 실패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다음 아이디어를 위한 초안이었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면 또 카페에 모였다.
피곤한 몸으로도, 카페에 앉으면 다시 생각이 돌기 시작했다.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카페에 앉는 순간 자동으로 아이디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과정이 바로 훈련이었다.
공간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었다.
‘공간이 문장을 바꾼다.’
조명이 달라지면 작업 톤도 달라지고, 음악이 바뀌면 내용의 흐름도 달라졌다.
카페는 보이지 않는 제3의 팀원 같았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각자의 악기를 합주하게 만들었다.
하루의 여행지
내가 고등학교, 대학 시절만 해도 거리는 프랜차이즈 간판으로 가득했다.
카페베네, 탐앤탐스, 할리스, 엔제리너스, 이디야.
간판만 봐도 들어갈 수 있었고, 메뉴도 익숙했으며, 배경음악도 늘 비슷했다.
시험 끝나고 “커피 마시러 가자”라고 말하면 결국은 다 그곳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넓은 테이블과 균질한 공기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그렇게 우리 청춘의 일상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바뀌었다.
“이번 주말엔 어디 카페 가볼래?”
이제 카페는 음료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목적지, 여행지가 되었다.
홍대 골목의 독특한 카페, 성수동의 공장 개조 카페, 교외의 독채 카페.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러 간 게 아니라, 그 공간을 경험하러 갔다.
포토존을 찍고, SNS에 올리고, “나 여기 다녀왔다”는 사실 자체가 소비가 되었다.
도시가 말하는 카페의 언어
카페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도시마다 다른 언어로 나를 맞이했다.
뉴욕: 속도의 언어
맨해튼 미드타운의 어느 작은 카페. (아마 이름은 10000 Cafe였던 것 같다.)
의자는 높고 좁았고, 테이블은 컵 하나 올리면 끝날만큼 작았다.
처음엔 의아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곧 알았다. 뉴욕은 머무르는 도시가 아니었다.
커피는 쉼이 아니라 연료였다.
한 잔을 들이켜면 곧장 거리로, 지하철로, 빌딩 숲으로 다시 뛰어들어야 했다.
좁은 의자와 작은 테이블은 불친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의 속도였다.
그날 나는 배웠다. 카페는 편안함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를 압축해 보여주는 무대라는 걸.
프라하: 농도의 언어
프라하의 아침은 한국에서 상상하던 모습과 달랐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천천히 하루를 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메뉴판의 기본은 언제나 에스프레소였다.
순간 망설였다. “아아는 없나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곧 짧고 진한 한 모금을 삼키자, 도시의 리듬이 보였다.
내 앞에 놓인 건 바게트 샌드위치와 작은 잔의 커피.
그것만으로 아침은 완성되었다.
체코의 커피 문화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빈의 전통 카페하우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문화가 프라하에도 스며들었다.
그래서 이곳의 아침은 대체로 짧고 강렬하다.
짧은 잔, 강한 농도.
프라하의 아침은 아예 하루를 길게 끌지 않는다.
대신 모든 농도를 압축해, 한 모금 안에 담아낸다.
파리: 머무름의 언어
내가 파리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
낡은 카페 안, 짙은 목재 테이블 위에 커피잔과 맥주잔, 그리고 접시가 함께 놓여 있었다.
신문을 읽는 노인의 손끝, 옆자리에서 흘러나오던 대화, 금빛 글자가 반사된 유리창.
한국에서 카페가 ‘커피와 디저트’였다면, 파리의 카페는 달랐다.
그곳은 삶 전체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는 무대였다.
커피는 단지 핑계였고, 진짜 목적은 머무름이었다.
하루의 한 장면을 길게 붙잡아두고, 그 여유를 함께 나누는 것.
그 순간 나는 알았다.
파리의 카페가 팔고 있는 건 커피 맛이 아니라, 앉아 있는 시간 그 자체라는 걸.
맥주와 커피, 신문과 요리가 뒤섞여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이 도시가 머무름을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는 그 사실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금도 그곳에는 나폴레옹의 모자가 전시돼 있다.
젊은 장교 시절, 그는 돈이 없어 모자를 담보로 두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한 잔의 커피가 사상을 키우고, 역사를 움직이던 공간.
파리의 카페는 삶 전체뿐 아니라, 시대의 언어까지 함께 써 내려가고 있었다.
교토: 길들이는 언어
교토의 어느 스타벅스, 나는 다다미 위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초록 로고가 새겨진 투명한 컵. 안에는 흔하디 흔한 아이스커피.
하지만 컵이 놓인 자리는 평범하지 않았다.
대나무 발, 종이 등, 낮은 단과 미닫이문.
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의 공기 앞에서,
100년도 안 된 글로벌 브랜드의 로고는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스타벅스가 교토를 이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교토가 스타벅스를 자기 언어로 저며 들게 만들고 있었다.
다다미 위의 스타벅스 컵은 묘한 긴장을 품었다.
현대와 전통, 글로벌과 로컬, 편리와 느림이 교차하는 장면.
그 장면이야말로 교토가 말하는 카페의 언어였다.
돌아보면, 내 청춘의 문장은 카페에서 쓰였다.
빙수의 달콤한 숟가락 소리, 카페베네 로고와 드라마 속 거품,
대학 시절 공모전 밤을 지탱하던 백색소음,
그리고 세계 도시들이 각자 다른 언어로 들려준 카페의 장면들.
그 순간순간이 내게 가르쳐준 건 단순하다.
카페는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라, 머무름과 경험을 연출하는 무대라는 것.
도시는 그 무대를 통해 나를 길들이고, 내가 쓰는 문장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문장은 소리와도 닮아 있다.
간판이 도시의 문장이고, 택시가 도시의 얼굴이었다면,
카페의 백색소음은 도시가 귓가에 속삭이던 합주였다.
나는 이제 묻고 싶다.
도시는 어떤 소리로 우리를 길들이고 있을까?
그 질문이 곧, 다음 장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