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J, 나를 만드는 것들 - 8
나는 도시를 시각보다 청각으로 먼저 기억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도시마다 고유한 톤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떤 도시는 간판의 색으로 남지만,
어떤 도시는 거리의 톤으로 남는다.
첫 번째 깨달음은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성조의 파도 속에서 살았다.
도시 한복판에서는 사람들의 외침과 버스 속 큰 목소리,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경적이 얽혀 하나의 거대한 합주를 만들었다.
밤이 되어도 그 에너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인천공항에 내리던 날, 당황스러울 만큼 조용했다.
사람들은 분명 말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톤이 낮았다.
성조 없는 한국어, 낮고 평탄한 억양.
그 순간, 한국은 ‘조용한 나라’가 아니라
‘낮은 톤의 도시’라는 감각으로 내게 각인되었다.
더구나 중국에서는 텍스트 대신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문화가 일상이었다.
웨이신(WeChat) 대화창에는 짧은 목소리 파일이 연이어 올라왔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도시는 늘 한 톤 높은 소리로 가득 차 있었고,
그만큼 귀는 늘 긴장한 채 깨어 있어야 했다.
돌아와서야 알았다. 언어도, 도시도, 저마다의 데시벨을 갖고 있다는 걸.
두 번째로 다시 한 번 ‘소리’를 생각하게 된 건 전기차를 처음 탔을 때였다.
엔진이 사라진 차 안은 낯설 만큼 고요했다.
속도를 올려도, 신호에 멈춰 서도, 들려오는 건 거의 없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시동이 켜진 게 맞을까?”
“지금 주행해도 괜찮은 걸까?”
고요 속에서 불쑥 고개를 든 원초적 의심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소리와 떨림은 배경이 아니라 ‘움직임의 증거’라는 걸.
그런데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자 다른 소리들이 솟구쳤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마찰음, 창틀을 스치는 바람의 결,
심지어 도로 표면의 재질까지 소리로 느껴졌다.
그때 알았다.
소음이 사라졌다고 해서 침묵이 오는 건 아니다.
대신, 이전에는 가려져 있던 또 다른 ‘톤’이 드러난다.
도시는 언제나 무언가의 소리를 품고 있고,
그 층위와 질감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일상과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러니까 소음이 줄어든 자리를 메우는 건, ‘없음’이 아니라 ‘다른 톤’이다.
숫자로 기록된 도시의 목소리
문학적으로라면 도시는 ‘톤’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람들의 목소리 톤, 간판의 톤, 분위기의 톤.
하지만 현실에서 도시를 기록하는 언어는 단순하고 냉정하다.
데시벨.
세계보건기구는 경고하고있다.
낮 동안 도로 소음은 53dB, 밤에는 45dB을 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 간선도로에 서 본 사람은 안다.
엔진과 경적, 바퀴가 뒤엉킨 길 위는 65~75데시벨로 출발한다.
밤에도 55를 넘어서는 순간, 창문을 닫아도 벽을 뚫고 들어오는 진동이 남는다.
2021년 청주는 낮 평균 72dB, 밤 68dB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숫자만 보면 그저 데이터 같지만, 그 도시의 일상은 하루 종일 제트기 옆에 선 것과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날것이다.
평균 80dB, 순간적으로 100~120dB까지 치솟는다.
MTA 플랫폼에 서면 대화는 금세 지워진고,
사람들은 본능처럼 헤드폰을 더 깊숙이 눌러쓴다.
볼륨을 키우려는 게 아니다.
그 소음을 잠시라도 밀어내기 위해서다.
어느 날, 나는 방향을 묻기 위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들어온 열차의 굉음이 상대의 대답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소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이다.
뉴욕의 지하철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목소리마저 지워낸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거리는 이미 ‘일상’을 넘어선다.
119dB.
제트기 이륙음과 같은 수치를 사람들은 매일 길 위에서 견뎌야 한다.
데시벨은 차갑게 보이지만, 사실은 도시의 체온을 드러내는 숫자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얼마나 큰 소리로 말하는지, 그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귀가 아니라, 몸으로 듣는 소리
도시의 소리는 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50dB을 넘는 순간, 몸은 이미 위협을 인식한다.
보이지 않는 알람이 켜지고,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작은 긴장이 쌓이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은 평소보다 더 세게 뛴다.
밤에는 그 대가가 더 뚜렷하다.
사람의 절반 이상이 소음 때문에 숙면을 잃는다.
한밤에도 기계음이 머릿속에 맴돌아 눈을 감아도 어둠이 오지 않는다.
불안, 피로, 우울감.
소음은 마음까지 잠식한다.
작업 능률이 떨어지고 작은 실수가 늘어나며, 하루의 리듬이 무너진다.
도시 소음은 거슬리는 배경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동시에 흔드는 공기다.
도시가 가진 억양, 도시는 그 리듬으로 말한다
중국에서 몇 달을 보내고, 한국 공항에 내리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낯선 게 아니라 오히려 익숙한 공기가 너무 조용하게 느껴졌다.
“한국어가 이렇게 부드럽고 작은 언어였구나.”
중국어의 성조는 억양 변화가 크고,
시장과 거리의 대화는 파도처럼 겹쳐 밀려온다.
그 속에서 지내다 돌아오니, 한국어는 볼륨을 낮춘 듯 들렸다.
언어도 데시벨을 갖는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낮은 주파수와 단정한 리듬을 가지지만,
중국어는 성조의 변화만큼이나 다양한 음역을 사용한다.
영어는 상대적으로 더 큰 볼륨으로 뻗어나간다.
이 차이는 단순한 발성의 문제가 아니다.
거리의 대화 톤, 도시의 활기, 문화의 밀도까지 함께 결정한다.
언어의 데시벨은 곧 도시의 톤이 된다.
브랜드는 어떻게 도시의 소리를 번역했을까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소리를 견디는 방식은 결국 기술과 문화에 어떻게 새겨졌을까?
SONY – 도쿄의 워크맨에서 WH-1000X까지
1979년, 도쿄에서 태어난 워크맨은 ‘이동 중 듣기’라는 개념을 전 세계에 선물했다.
번잡한 도시의 소리를 뚫고, 자기만의 사운드트랙을 들을 수 있다는 경험.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소니는 WH-1000X 시리즈로 소음을 줄이는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음악을 크게 트는 대신, 주변 소음을 지우고 고요 속에서 듣는다.
도쿄라는 도시의 기술 집약과 통근 문화가 그 기술을 자연스럽게 밀어 올린 셈이다.
소니는 도시 소음을 ‘편안한 톤’으로 바꾸며 발전해왔다.
BOSS – 보스턴의 항공 실험에서 뉴욕의 지하철까지
1978년, 아마르 보스 교수는 항공기 엔진의 굉음 속에서 노이즈 캔슬링 개념을 스케치했다.
1989년, 첫 상용 항공용 헤드셋이 나왔고, 2000년에는 QuietComfort가 소비자 시장에 들어섰다.
뉴욕의 지하철 평균 80데시벨, 순간적으로 100을 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볼륨을 키우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지우는 헤드폰을 썼다.
보스턴의 연구실에서 태어난 기술이 뉴욕의 소음을 견디는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보스는 도시 소음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Shure – 시카고의 무대와 거리의 목소리
1925년 시카고에서 설립된 슈어는, 대도시의 소음을 ‘압도하는 사운드’로 돌파했다.
1939년 Unidyne 마이크는 거리 연설과 라이브 공연의 아이콘이 되었고, 수많은 재즈 클럽과 블루스 무대에서 “시카고의 톤”을 증폭했다.
후일 SM58 마이크는 전 세계 공연장의 표준이 되었으며, 무대와 거리에서 쏟아지는 소음을 뚫고 목소리를 전하는 데 최적화된 도구였다. 슈어의 DNA는 지금도 이어져, 인이어 모니터와 헤드폰까지 확장되며 라이브 도시의 톤을 담아내고 있다.
슈어는 소음을 지우지 않고, 그 소음을 ‘뚫고 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SENNHEISER – 독일 베데마르크의 정밀한 엔지니어링
1945년 전후 폐허에서 시작한 젠하이저는 소음을 이기기보다
원음을 더 정확히 드러내는 길을 골랐다.
1968년 HD 414, 2009년 HD 800 같은 레퍼런스 헤드폰은
“정확한 소리”라는 독일식 해법을 보여준다.
젠하이저는 소음을 ‘정확한 원음’으로 상쇄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BANG & OLUFSEN – 덴마크 스트루어의 고요한 디자인
덴마크 스트루어의 고요 속에서 B&O는
소음을 줄이기보다 고요 자체를 미학으로 바꾸었다.
1938년 Beolit 라디오에서 오늘의 Beoplay까지,
그들의 제품은 ‘조용함의 디자인’을 세계의 거실에 들였다.
B&O는 소음을 ‘디자인된 고요’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AKG – 비엔나의 스튜디오 정확성
1947년 비엔나의 소규모 작업실에서 출발한 AKG는
방송국·스튜디오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
D12 다이나믹, C414 콘덴서는 세계 표준이 되었고,
K701/K712는 스튜디오가 요구하는 고요와 정밀을 구현했다.
AKG는 소음을 ‘정확하게 걸러낸 원음’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Focal – 프랑스 생테티엔의 드라이버 혁신
979년, 엔지니어 자크 마울이 세운 포칼은
처음부터 드라이버 제작에 천착했다.
폴리글라스, 케블라, 베릴륨…
프랑스의 정밀 기계와 예술이 교차해 낳은 소재 혁신.
Grande Utopia는 도시 소음을 지우는 대신,
예술적 원음을 극도로 증폭해 각인시켰다.
포칼은 소음을 ‘예술적 울림’으로 조각하며 발전했다.
데시벨과 리듬 사이, 우리가 사는 도시
도시는 소리로 피곤하게도 하지만, 그 소리 덕분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도 한다.
완전히 조용한 도시가 반드시 좋은 도시는 아니다.
숨 쉬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너무 고요하면 활력도 함께 사라진다.
뉴욕의 소란은 불편이면서 동시에 에너지다.
브롱크스 블록파티의 강렬한 비트와 대형 사운드 시스템은
도시의 소음과 맞물려 힙합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
파리의 카페는 다르다.
잔과 그릇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 낮게 깔린 대화 톤이 머무름을 설계한다.
서울의 번화가는 끊임없는 소리 덕분에 쉽게 잠들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다.
과도한 소음은 몸을 병들게 하지만,
적당한 소리와 톤은 도시의 리듬을 살린다.
소음은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잘 조율해야 할 악기에 가깝다.
도시의 데시벨, 브랜드의 목소리
나는 다시 전기차 안을 떠올린다.
엔진이 사라진 자리에 타이어 소리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소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리고 설령 소음이 사라진다 해도, 도시는 여전히 저마다의 톤을 남긴다.
서울의 간선도로, 청주의 낮 72dB, 뉴욕 지하철의 100dB, 다카의 119dB.
이 수치는 단순한 환경 데이터가 아니라, 도시가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데시벨은 결국 브랜드와 문화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뉴욕의 고소음 통근 환경은 Bose의 노이즈 캔슬링을,
도쿄의 고밀도 생활은 소니의 워크맨과 헤드폰을 낳았다.
독일의 차분하고 정밀한 엔지니어링은 젠하이저,
덴마크 농촌의 고요함은 뱅앤올룹슨의 미학으로 옮겨졌다
.
소음은 배경이 아니라 도시의 체질이었다.
그 체질에 맞춰 기술이 발명되고, 브랜드가 성장하며,
문화는 새로운 리듬을 얻었다.
우리가 쓰는 헤드폰, 듣는 음악,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은
결국 데시벨이 이끌어온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마지막엔 도시가 아니라 나에게로 시선이 돌아온다.
내가 살아온 하루, 내가 걸어온 거리, 내가 말해온 목소리.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숫자로 기록한다면, 나는 어떤 값으로 남을까.
도시의 데시벨, 나의 숫자는 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