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서울, 본격 부흥의 시기?

ENOJ, 나를 만드는 것들 - 10

by 엔오제 ENOJ

#10 심상치 않은 서울, 본격 부흥의 시기?

서울을 처음 마주한 사람은 종종 어리둥절해한다. 도시 한복판을 가르는 한강은, 세계의 다른 대도시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강은 도시를 양쪽으로 쪼개놓으면서도 동시에 묶어둔다. 강북에는 오래된 리듬의 얼굴이, 강남에는 속도의 얼굴이 있다. 두 얼굴의 긴장감은 서울을 낯설고 매혹적인 도시로 만든다.


뉴욕처럼 압도적인 스카이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쿄처럼 치밀한 질서가 잡혀 있는 것도 아니다. 홍콩의 화려한 불빛이나 상하이의 스케일과도 다르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묘한 흡인력을 발산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서울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반응이 돌아오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나의 MoMA, 그리고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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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MoMA를 찾았을 때, 전시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긴 입장 줄이었다. 줄에 서 있는 그 시간은 도시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의식 같았다. 어렵게 들어가 작품을 보고, 현대카드 20% 할인을 받아 굿즈를 샀다. 그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나만의 MoMA’였고, 여행의 증거였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로고 하나가 뉴욕 전체를 상징했다.


서울은 조금 다르다. 전시관도, 굿즈로 가득한 디자인 스토어도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문을 연 MoMA 북스토어가 열렸다. 그 안에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디자인 서적과 현대미술 책들이 있다. 작은 아트 소품과 책장을 넘기는 순간, MoMA의 ‘맛’을 살짝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뉴욕 본관을 직접 가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굿즈를 마음껏 사는 공간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오픈한 MoMA 북스토어 하나만으로도 서울은 지적인 결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어김없이 같은 이름이 있었다. “아, 또 현대카드구나.” 낯선 예술을 누구보다 먼저 데려와 우리 앞에 펼쳐놓는 손길. 결국 나는 그 태도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초의 퍼플렉시티 카페는 왜 서울에 왔을까?

퍼플렉시티는 본래 온라인에만 존재해야 하는 기업이었다. 질문과 답변, 검색과 결과. 그러나 서울에서는 커피 향이 나는 공간으로 내려왔다. 구독자는 반값에 커피를 마시고, 검색창 대신 노트북을 펼친다.


이 풍경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온라인의 추상적인 기술이 생활의 감각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왜 하필 서울일까.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국가 코드도 +82(빨리)의 나라 아니겠나.



Kㅗ급 노래, KlN거운 노래

도쿄의 럭셔리 바&레스토랑에서도, 뉴욕 타임스퀘어 앞 미니소에서도 K-POP은 배경음처럼 흘러나왔다. 서울을 떠났는데도, 서울에서 들린 리듬이 따라붙었다. 오징어게임에서 시작된 파장은 이제 드라마를 넘어, 도시의 공기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외국인들은 “콘텐츠 때문에 서울에 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한국어는 더 이상 장벽이 아니라, 세계가 따라 부르는 리듬이 되었다. 콘텐츠가 곧 도시의 확장이고, 서울은 그 중심축이 되고 있다.



나도 새로웠는데, 외국인은 어땠을까.

외국인 여행자들의 리뷰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사람들이 잘 입는다.”
“도시가 활기차다.”
“카페가 너무 많아 놀랐다.”
동시에 “너무 붐비고 피곤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나는 외국인의 눈으로 서울을 본 적은 없지만, 상상해 본다. 강남의 빛나는 속도와 강북의 낡은 골목이 동시에 들어올 때, 그 낯섦은 어떤 매혹이 될까. 뉴욕은 거대한 스케일로 사람을 압도하지만, 서울은 작은 장면들로 붙잡는다. 골목 모퉁이의 카페, 저녁에 켜지는 간판 불빛, 지하철 출구 너머로 보이는 산.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기념비적이지 않지만, 일상의 틈새에서 빛나는 풍경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득 내 어린 시절 기억이 겹쳐든다. 처음 가봤던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 홍대, 그리고 성수. 어니언 카페와 대림창고가 부흥하던 그 시절의 서울은 나에게도 충분히 낯설고, 놀라울 만큼 힙한 도시였다.



서울은 지금, 매일 새로 섞이고 있다.

뉴욕이 늘 새로운 트렌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건, 서로 다른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언어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부딪히고 섞이며 새로운 장르와 감각이 탄생했다.


서울은 그만큼의 충돌을 오래 겪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K-POP과 한류로 시작된 관심은 곧 유입으로 이어졌고, 그 유입은 매일 다른 충돌을 만들어낸다. 홍대의 음악 바, 을지로의 낡은 골목, 성수의 카페와 한남동의 레스토랑. 서울의 풍경은 매일 새로운 조합으로 다시 섞인다.


문화적 충돌은 일회성이 아니라, 유입이 계속되는 한 반복된다. 지금 서울은,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연속의 중심에 있다.



서울은 뉴욕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아마도 한 세기가 지나면 서울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는 늘 세대를 건너 다른 세대로 이어지며 완성된다.

그리고 그 완성의 과정 한가운데, 서울은 지금도 매일 작은 장면을 쌓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알 수 없다.

다만 빠르게 뒤섞이는 이 테스트베드 속에서, 서울은 매일 새로운 실험을 벌이고 있다.


작은 골목 하나에도 놀 것이 있고, 카페 한 칸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다.
데이트 코스를 애써 짜지 않아도 된다. 그냥 걷다 보면, 우연히 부흥의 조각과 마주친다.


걸어 다닐수록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도시. 서울.


이 서울을 세계인이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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