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금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마음, 내가 매순간 느끼는 짜릿함과 가슴떨림 같은 걸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지식이나 안목, 식견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이제 더이상 내가 가슴뛰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의 어떤 취미와 취향도 그걸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리 정해놓은 몇가지 일들 중에 하나를 골라야 삶을 지탱해나가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든, 노가다를 하든, 교육을 하든, 금융을 하든, 법을 하든, 식당을 하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슴도치를 키워도 되고, 전세계의 신기한 땅을 찾아다녀도 되고, 그 어떤 걸 해도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진짜 나의 이야기를 채울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일'을 찾는 데 필요한 건 식견이 아니라 용기다.
우리는 솔직하기가 어렵다.
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다.
인간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거짓말을 하는 건, 그렇게 심각하게 못나고 볼품없고 머저리 같은 게 아니다.
인간은 애초에 거짓말을 하기에 몹시 적합한 존재다.
그래서, 사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매우 희귀한 위대함이자 용기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걸 비난하는 대신, 진실할 수 있는 용기를 찬양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고 대개 생각하기 때문에,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큰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솔직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우리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만큼
우리자신은 조금씩 공허감과 알 수 없는 불안에서 자유로워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너무 자책하지 마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은 애초에 솔직하기 힘든 존재다.
(솔직한 사람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위대한 것이지 그러지 못한 자들이 못난 게 아니다.)
용기가 나지 않는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자유를 얻어야 해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내 첫번째 책에서 인간이 진짜 자기다운 자신으로 거듭나는 방법의 순서로,
'자유' 다음에 '발견'을 배치했다.
하지만 '자유'라는 건 너무 추상적인 문제고, 이걸 다 쓰기엔 이미 글이 길어져있으니 한가지만 이야기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내게 솔직해질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죽음'을 상상하라.
죽음 앞에 섰을 때, 이제 곧 세상을 뒤로 하고 눈을 감아야할 때,
가장 내가 하지 못했어서 아쉬워할만한 것은 무엇일까.
이걸 상상해보면 도움이 된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언젠가 죽는다.
삶이 길다면 길지만, 조금만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바라보면 마치 '찰나'와도 같이 짧다.
그러나 그 무게와 압박감 때문에 우리는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죽음'을 잊고 지낸다.
그러니 용기를 내기 위한 괜찮은 묘안을 원한다면, 한 번 상상해보자.
아마, 수차례 상상하고 상상하다 보면, 언젠가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