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CED"/ 스트레스받을 때는 얼큰한 국물/ 한 달 만에 한국 택배
조금 늦은 듯한 글을 쓴다.
이렇게 텀이 길어지는 까닭은 일기장 같은 이 글의 마감 기간이 조금 짧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선은 생각이 정리되는 순에 맞춰 차근차근 써보고 있다. 서두른 글에는 서두른 마음이 쉽게 담기니까.
콘센트 모양조차 한국과 다른, 어쩌면 낯선 나라에 산다는 건 내가 쉽게 평소에는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을 매일매일 겪고 있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들을 만날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몰라, 말로 가다듬는 것에 시간이 좀 걸린다. 물론 이것 역시도 늘 그랬듯이 삶은 익숙한 방향을 찾아 흘러가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새로운 광경이나 경험을 하는 날들이 더 많게 느껴지는 일주일의 시간들이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글을 쓰는 건 좋은 것 같다. 약간은 정돈된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뭔가를 말하고 싶다는 어떠한 열망 같은 것들은 한국어도 영어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보다 정확하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은데 그게 왜 이렇게 늘 어려운지. 어쩌면 내 욕심 같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아주 작은 것일지언정 꾸준히 하도록 노력 중이다. 영어는 제자리 같다가도 조금 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는 것 같다가도 아직은 먼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든다. 저 사람들이 뭐를 그렇게 열심히 말하고 있는지, 뭐를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는지 그저 궁금한 마음이다.
언젠가는 나도 같이 웃을 수 있겠지,
모든 건 가끔 너무 할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곤 한다.
영국은 겨울을 맞이하면서 해가 아주 짧아졌다. 아침 7시가 넘어서까지 어두운 날도 많고, 오후 3-4시부터는 슬슬 해가 지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하늘을 보면 새삼 "벌써?"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여기서 산다는 게 가끔은 이상하게 와닿지 않는 날이 있다고 해야 하나. 비현실적인 기분이 가끔 든다. 여기에 녹아들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이렇게 빠르게 걷는 다양한 인종의 무리 안에 있는 내가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상한 기분. 집에 가고 싶다가도, 아직은 갈 수 없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언젠가는 돌아가는 날이 오겠지. 모험은 설레다가도 두렵다.
1. "Wicked"를 보러 가요
감사하게도 아는 언니가 표를 주셔서 보러 간 위키드! (캄삼니다)
사실 가는 건 너무 즐거웠지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영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미가 좋아 아주 재밌게 봤다. 영국 영화관은 생애 2번째였는데, 큰 관에서 보니 더 새롭고 웅장하고 또 좋았다. 알아듣는 건 반이고 못 알아듣는 것도 반이었는데, 그래도 주인공의 감정선들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무 많은 좌절들과, 너무 많은 따돌림과, 주류사회에서의 배제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소수자의 이야기 같기도 했고 옳은 것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기도 했던, 최근 빠진 과자와 함께한 즐거웠던 극장 경험.
2. 언제나 상쾌한 웃음을 가진
A 언니와 즐거운 런던 나들이!
(1) 사진 A.
저번에도 포스팅을 분명히 했던 것 같은데 얼큰한 국물을 먹을 일이 드문 요즘에는 아주 기회가 생겼다 하면 정신없이 열심히 먹게 됨을 느낀다. 얼큰하고 복잡시러운 맛을 찾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면 또 이렇게 저렇게 하며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아직은 뭔가 선뜻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가 아쉽다. 시간도 들고, 돈도 들고. 아직은 그 모든 것들이 조금은 용기가 필요하게 느껴진다. 이상하지.
오늘은 아주 매운맛을 시켰는데도 저번처럼 맵지가 않아서 조금 아쉬웠지만, 얼큰한 국물에 이성을 잃고 또 그냥 정신없이 열심히 먹었다! J 오빠가 추천해 준 다른 음식점도 나중에는 한번 가봐야지. 거기는 좀 더 한국처럼 먹을 만큼을 담아서 저울에 올려놓고 먹는 방식 같더라.
(2) 사진 B: 이 사진은 왠지 우리 이탈리아 사장님이 생각나서 찍어본 어느 유명인의 그림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같이 가본 오후. 만족스러운 식사 후에 소화시킬 겸 걷고, 언제 봐도 예쁜 박물관 내부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갤러리도 꽤 오랜만에 가는구나.
킹키한 우리 사장님. 이제 보니 어느샌가 좀 정이 들었다. 사장님 생각을 하면 조금 웃음이 난다.
처음에는 서양 분과 일하는 게 처음이라서, 그것도 상사분이라서 조금은 낯설고 쉽지 않은 기분이 들었는데 막상 같이 부대끼고 일을 해보니 그냥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날 거는 혼내시고, 칭찬할 거는 칭찬하신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여태까지 느껴온 짧은 경험이겠으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 거침없이 나쁘고 좋고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점이라고 해야 할까. 디자인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서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나누게 되는데, 부족한 영어실력에서 내 생각을 스피디하게 말하자니 계속 중도적인 단어 선택이 안된다. 뉘앙스에 따라서 내 어조를 조절하기가 제법 어렵다. 영어는 너무 재밌고 또 어려워. 답답한 일도 계속 생기고, 말을 못 해서 은근하고 잔잔하게 억울한 일도 생기니 열받는 화력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도 또 한참 시간이 걸린 후에야 늘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겠지.
(3) 언니가 추천해 준 스콘 집!
한번은 먹어봐야지 먹어봐야지 하다가 뭔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미루고 미뤄졌던 나의 첫 스콘 시식. 클로티드 크림을 이렇게 제대로 먹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딸기잼과의 조합이 너무 좋았다! 퍽퍽한 스콘은 좋아해서 괜찮았는데, 뭔가 아쉽게 느껴졌던 이유는 따뜻하게 먹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글을 쓰면서 든다. 약간 데워주셨으면 더더 맛있게 먹지 않았을까. 그래도 영국에서 먹은 첫 스콘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먹었던 나의 첫 스콘.
아담하고 오래된 가게였으나, 사람도 많고 정겨웠다. 특히 묘하게 수다떨기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공간이 주는 매력은 참 무궁무진 하구나.
3. 택배를 찾으러 물류창고까지 간다
한국에서부터 오는 택배를 기다린 지는 사실 어언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새 집과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일상들을 보낸 까닭에 트래킹 넘버를 조금 늦게 찾아봤고, 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도착했던 나의 소포는 배달 시도 실패라는 상태 메시지가 뜬 후 한 달에 넘게 오지 않았다. 사실 이사 간 내 방은 3층이라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문을 두드리는 게 잘 안 들릴 때가 있는데, 그날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저 멀리서 쾅쾅 쾅 소리를 들은 듯- 하다가 지나쳐버린 죄였다.
재배달 신청은 4번 했고, 결국 다섯 번째는 우체국 배달, 그마저도 안돼서 전화도 두 번 했지만 오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 오지 않겠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찾으러 물류창고까지 갔다.
참고로 혹시 나와 같은 분들이 있다면 신분증은 꼭 들고 가자! 나는 가방에 항상 넣어놓았던 까닭에 모면할 수 있었다. 처음에 물었을 때 식은땀이 살짝 - 분명 없으면 안 줄 테니까! 한 시간 걸려서 왔는데 다시 올 뻔했다 정말.
내 키의 2/3만 한 택배 상자 두 개를 끙차 옮겨서 우버를 타고 3층까지 들고 올라온 오늘. 그래도 방에 가져다 놓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나의 작은방에 꾸깃꾸깃 구겨 넣으니 그래도 다 들어는 갔던 나의 겨울옷들. 사실 이 겨울옷이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옷이었다. 나 옷이 이렇게나 없었구나.
정리도 다하고 방도 깔끔하게 정리한 뒤 맛있게 밥도 먹은 오늘의 사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나만큼이나 기뻐하셨다. 저거 보내느라 익숙하지 않은 해외 배송에 나름 마음고생하셨던걸 알아서 다 같이 드디어 받으니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던 오후의 통화. 그래도 뭐 하나 잃어버린 것 없이 다 잘 왔구나.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고거 다녀왔다고 기운이 쑥 빠져서 취준도 좀 하고 영어 좀 공부하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는 까무룩 기절해버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일어나서 겨우 샤워를 하고 나니 좀 기운이 생겨 이렇게 오늘 치 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평화로운 어느 저녁 날.
내가 부족해서 더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이십 대 내내 부터 지금까지도 도무지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알지 않은가. 나를 너무 몰아친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것은 좋으나 싫으나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일지언정 그저 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너무 나를 더 빨리 가라 보채지 말고, 모진 말로 자책하지 말고, 그냥 오늘 내 할 일을 작게 하나라도 마무리 지었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잘하고 있다"라고 늘 말해주자.
차근차근 천천히.
그렇지만 포기하지 말고.
우리 모두 오늘 하루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