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던 사치갤러리 한국전시/ 첫 런던 마켓 구경/ 과학박물관 구경하기
파리 투나잇으로 시끄러웠던 이웃사람들 덕분에 부스스스 눈을 뜬 오늘 아침.
요즘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탓 +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긴장이 되는 탓 때문인지 잠을 자려고 누우면 예민해져서 정작 잠이 드는 것은 한참 걸리기 일 수 있는데, 어제는 자유분방한 사람들 덕분에 정말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음악...! 꺼줘어
소리는 지르지 말아줘....!
그래도 뭐 이제는 '오늘도 잠을 잘 못 잤군' 하고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고, 방도 좀 치우고, 나갈 준비도 하고, 영어도 쪼끔 공부하고, 가족들한테 전화도 좀 하고 하니까 어느새 나갈 시간이 돼서 밖에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제는 잠을 못 자는 것 자체에 조금 익숙해진 것이 아닌지. 게다가 미술관에 가는 건 늘 너무 좋으니까.
친절하신 호스트 아주머니께서 한국전을 한다고 알려주셔서 방문한 사치 갤러리.
사치 갤러리를 가는 것 자체도 너무 좋고, 추천해 주신 마음도 너무 감사해서 방문한 건 한점의 후회도 없이 너무 만족했지만, 전시 자체가 생각보다 조금은 별로였어서 아쉬웠다. 여기서 전시하는 것이 한국 입장에는 홍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텐데 잘 못 살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왜 전시 기획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태어난 나라를 서양인들에게 알리려고 돈과 시간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영국까지 찾아온 전시일 텐데, 정작 내용이 너무 요연한 느낌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을 과연 제대로 보여준 것인지조차 의문이 들었던 전시. 지금 영국은 한국 음식이 한창 붐이었는데, 물 들어올 때 노를 못 젓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이날 즐거웠던 것이 있다면 그건 사치갤러리 소품 숍과 씩씩한 언니분과 고 앞에서 같이 나눠 먹은 마켓 음식들!
사치 갤러리 소품 숍은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내가 여기를 여행으로 왔으면 진짜 두 개는 사서 갔을 것이 분명...
(갤러리는 안 봐도 꼭 소품 숍은 들렸다가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인생 첫 빠에야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새삼 이런 맛을 이제 알았다니 싶었다. 새우랑 완두 콩의 조합이라니! 레몬이 느끼함을 잡아줘서 더 잘 어울렸던 기분이. 약간은 칼칼한 카레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게다가 해산물도 아주 싱싱했다.
슬쩍 둘러보다보니 사치갤러리 앞 마켓 한편에 한국 분이 운영하시는 닭강정 집도 있다는 걸 알아서 갔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닭강정이 좀 아쉬웠다. 양념은 맛있었는데 바로바로 튀겨지는 시스템이 아니라서 눅눅했고 만두도 직접 만든 게 아니고 마트에서 사서 그냥 찌시는 느낌이. 한국 음식 이거보다는 더 맛있는데. 이럴 때는 본토의 맛이 새삼 더 그립다.
그리고 언제나 씩씩한 웃음의 언니분이 패이보릿 디저트 메뉴라고 하셨던 까눌레도 먹었는데 이것도 너무 맛있어서 만족도 최상이었던 마켓 방문기.
행복해지고 싶나요
그렇다면 까눌레를.
행복은 멀리 없었다.
서점도 들리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지만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과학 박물관에 들렸다.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 옆에 뭔가(?) 있다고는 들었었는데 이번이 드디어 첫 방문. 인류가 일궈놓은 온 세상의 과학 업적을 만나고 온 기분이었다. 와 이걸 다 인류는 해냈을까. 돌아다녔을 뿐인데 그냥 과학 책 한 권 뚝딱 읽고 온 기분.
은근히 볼 것도 사이사이에 많고, 구성도 좋고, 전시 동선도 불편하지 않게 모든 사람을 배려했다는 게 느껴질 만큼 너무 잘 짜여 있어서 그 옆 자연사보다는 개인적으로 여기가 훨씬 좋은 경험이었다. 아주 고민 끝에 이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그 공간에 들어가 걸어다니면서 보고만 있어도 충분히 느껴지는 전시였다. 이럴때 영국이 지닌 역사의 깊이를 조금 깨닫고는 한다. 일본과 영국은 비슷하다던데. 이 곳도 참 섬세한 나라다.
게다가 언니분의 추천으로 시작된 3층에서부터 1층까지 내려오는 동선은 그야말로 완벽... (짝짝)
아주아주 알찼던 하루!
가는 길에 호스트 아저씨의 최애 디저트라고 하셨던 말차 크레페와 홍차 크래패를 포장하고 집에 가면서 본 하늘. 언제나 다정한 마음으로 두 분이 챙겨주신다는 걸 알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드렸다. 포장하고 집에 올 때까지 너무 흔들거리면서 온 것 같아서 망가졌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래도 잘 드신 것 같아 너무 다행이다.
재밌는 일이 많은 하루였구나.
얼른 씻고 자자.
모두들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