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교수님의 부모교육 강의를 듣고
아이에게 좋은 부모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너에게 좋은 부모일까.
한창 신나게 노는 아이에게 자야한다며, 내 할 말만 하고 아이의 이야기에 대꾸를 하지 않은 적이 있지 않은가. 피곤한 저녁, 아이를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에 급급해 아이와의 눈 맞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쉬운 훈육을 위해 아이의 몸에 손을 대거나, 혼자 두고 간다는 겁을 주며 아이를 억지로 움직이게끔 한 적이 있지 않던가.
오늘 아침에 이곳에 올 때도 아이에게 곧 나가야 한다며 빨리빨리를 앵무새처럼 외쳤다. 당장 해야할 일만 집중해 신나게 간식을 통에 담고 있는 아이의 표정과 이야기는 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 특히 하루가 시작하는 아침이면 자주 있는 일이다.
먹는 것, 입는 것처럼 아이의 생존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부모의 기본적인 역할에 몰두해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기보다 'To do list' 처럼 해야할 일, 부모로서 매일의 업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일과가 끝나고 하루의 에너지가 떨어지는 날이면 아이와의 시간을 일의 연장선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교수님의 말을 인용하자면 "- 하지마, 안돼!"라는 통제의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내가 더 편하기 위해.
아이의 자존감은 결국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비롯된다. 지금 현재의 나는 우리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유별난 아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키우기 어려운 아이, 사고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의 행동을 앞서 제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 무엇을 하지 않아도 너라서 사랑한다는 것. 아이는 그 믿음과 사랑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의 행복을 위한 인생의 성공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 있었는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물질적, 사회적인 성공만이 아닌,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성공적인 인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 잘하는 것, 강점에 초점을 맞추고 그 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들 수 있다는데 동의하기에 나의 행복을 찾는 과정이 아이를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금은 'AI 인공지능의 시대'가 왔다. 채팅창 하나로 온 세상의 지식을 얻고, 쉽게 재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런 인공지능은 딥 러닝(Deep Learning)으로 학습을 하게되는데, 이러한 딥 러닝은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특성이라고 한다. 중장비 자동차와 공룡에 빠져 때로는 어른보다 전문가처럼 이름을 줄줄 외고, 해가 지도록 모래놀이에 빠져있는 아이, 땅파기에 몰두해 손발톱이 새까매지도록 노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이건 우리 집 아이의 이야기다) 이러한 반복적인 놀이의 반복이 스스로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딥 러닝의 기술인 것이다. 이미 아이는 인간의 두뇌의 뉴런을 놀이를 통해 발달시키고 있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AI 시대에는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 중요하게 되는데, 이 공감 능력은 창의력과 연결된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예측하지 못한 수요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애착(Attachment)이 중요하다. 존 보울비(John Bowlby, 1907-1990)가 형성한 애착 이론은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와 자식간에 따뜻하고 밀접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지만,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에게 사랑의 말과 인정을 바라고 있었다. 지금도 엄마 아빠의 사랑의 표현이 그립고 잘하고 있다는 인정의 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님의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전에 "나는 니가 무척 자랑스럽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교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 아버지에게서 들으셨던 그 말씀을 들으니 눈이 시큰해졌다. 나도 나의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말, 지금의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한 아이의 부모가 되니, 아이를 갖기 전보다 나의 엄마아빠가 자주 생각난다. 내가 받았던 사랑, 좋았던 기억, 듣고 싶었던 말들을 우리 아이에게 해주면 어떨까.
먼 훗날 우리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떠올렸을 때 좋은 엄마였지, 좋은 아빠였지... 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면, 그리고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고 물리적인 시간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결국 부모의 권위는 나의 감정을 다스리고 아이를 존중하는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권위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무서운 인상을 쓰고 소리를 높이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 마음을 잘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오늘 어린이집 하원길에 아이를 만나면 눈을 맞추고 더 꼭 안아주고 싶다. 그 작은 입술로 오물조물 일과를 말하는 이야기에 더 귀를 세울 것이다. 자기 전 아이와 장난감과 책 없이, 아무런 목표 없이 나도 재밌고 아이도 재밌게 15분간 놀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