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엄마가 자란 곳
파주.
엄마가 학교 다닐 때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었어. 이곳을 얘기하면 물난리 났던 곳(1996년 7월 임진강 유역 범람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이나 군 복무를 했던 곳, 북한과 가까운 곳으로 기억하곤 했어. 피읖이 들어가 그 마찰이 특히 강한 소리를 내 더욱 얘기하기 민망했던 거 같아.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는데 그때에도 파주에서 출퇴근을 했어.
서울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파주로 전학을 왔는데, 텃세를 부리는 친구들과 낯선 환경이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겼던 거 같아. 성인이 되어서도 먼 거리와 불편한 교통 편으로 하루 3시간 이상을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지냈었지. 아빠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처음으로 부모님과 정식으로 독립을 하게 되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곳을 떠나게 되었어.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자라왔느냐가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처음에는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문득문득 내가 자라 온 파주의 모습들이 그리워졌어. 아무 데나 댈 수 있던 차는 이웃의 눈치를 봐가며 주차해야 할 때도 있었고, 저녁이면 당연히 조용하고 어두운 환경 지내던 것이 사람과 차 소리, 밝은 도시의 불빛으로 가득 찼지. 너무나 당연했던 조용함과 맑은 공기, 행동의 자유로움 등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어.
할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잡초도 뽑고, 꽃도 심고, 나무도 가꾸셨어. 새벽 눈 뜨자마자 나가서 점심 때쯤 들어오셨는데, 내가 "아빠 힘들지도 않아요? 좀 쉬엄쉬엄 해요."라고 얘기하면 "나중에 이곳에서 손자가 뛰어놀 곳이잖아."라고 말씀하셨어. 생각만 해도 너무 즐거우셨대. 그런데 요즘 정말 할아버지 말대로 네가 이 공간에서 자라고 있어. 스스로 만지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진 거 같아. 나무와 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네가 좋아하는 멍멍이와 야옹이도 있고, 대문만 나가면 흙을 밟을 수 있는 곳.
엄마가 자라고,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고, 네가 뱃속에 있었을 때 증조할머니와 사진을 찍고, 너의 첫 생일잔치를 하고, 네가 이곳에 두 발을 딛고 걷고. 엄마의 할머니부터 우리 아기까지 벌써 4대의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어. 내가 자라고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공간에서 너와 함께 걷고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해. 코로나로 인해 마음껏 다니지 못하는 요즘, 마음 편히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더욱더 감사해.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야기의 끝이 있을 때까지 지금의 아름답고 고마운 순간들을 맘껏 누리자.
파주,
여기에서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