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부족한 일

by 안종익


물이 시원스럽게 논으로 들어가고 있다. 들어가는 물을 바라보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어른들이 말하길 “자기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와 “자식 입으로 밥 들어가는 모습”이 가장 흐뭇한 일이라고 말하던 것이 기억났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물 내려오는 물고를 찾아서 올라갔다. 앞으로 논에 물을 넣으려면 물이 내려오는 길과 어디서 막아야 우리 논으로 물이 향하는지 알아 놓으려고 갔다. 물은 많고 잘 내려오고 있었다.

다시 돌아서 오면서 보니까 우리 논에 물이 제법 찬 것이 보이고 물도 잘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새로 한 논둑에 물이 새는 것 같이 보였다. 급히 달려갔다. 논둑이 터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논둑 터지는 것을 보면서 급한 대로 발로 막고, 삽으로 흙을 퍼서 막았다. 흙을 넣자마자 떠내려간다. 조용하던 물이 한 곳으로 몰리니까 막을 수가 없었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느낌은 있었다. 터진 논둑은 못 막는 것이다.

그냥 밖으로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구경이나 했다.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라 비워졌다. 이제까지 들어온 물이 다 빠져나갔다.

갑자기 일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삽을 논바닥에 꼽아 놓고 집으로 왔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논둑 터지는 꼴을 본 것이다. 사실 논둑 터지는 거 본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자랑스럽거나 이야기할 거리는 아닌 것 같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논을 갈아엎어서 물을 넣어 땅에 어린 모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땅을 잘게 부수고 그 위에 물을 대어서 어린 모가 쉽게 꼽힐 수 있도록 하면서 논이 높고 낮음이 없이 수평으로 평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린모는 물속에 묻히면 죽고, 물이 없어도 말라죽는다. 그러니 논이 수평이 잘 맞아야 물에 나오는 모도 없고 물에 잠기는 모도 없이 물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논에 물을 넣기 때문에 밭과 달리 물이 넘치거나 터지지 않게 뚝이 튼튼해야 한다. 작년에도 논을 했던 곳은 원래 논둑이 있어 문제가 없지만, 밭을 했던 논은 논둑을 다시 해야 한다.

요즈음 논둑 하는 기계가 있어서 쉽게 한다고 하지만 그 기계가 보통 농가에는 없기 때문에 농협에서 빌려서 사용한다. 그러니 빌리러 가기도 시간 걸리고, 기계를 조립하기도 귀찮으니까 논둑을 새로 해야 하는 논은 기계 가진 사람이 하기 싫어한다. 그래도 부탁을 했지만 여러 핑계로 거절하니까 직접 삽으로 뚝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둑이지만, 한나절 삽으로 만들었다.

밭을 오래 해서 논이 수평이 맞지 않아서 눈으로 보아 높은 곳의 흙을 퍼 와서 논둑을 만들었다. 높은 곳의 흙을 삽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고 일도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서 생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나절 고생하니까 겉보기에는 논둑이 되었다.

부족한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힘이 많이 들어서 더 하기가 싫었다. 논에 물을 넣었을 때 논둑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일을 마쳤다.

그러고는 다음날 논을 트럭터로 삼기 위해서 물을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논에 물을 넣다가 뚝이 터진 것이다.


또 그 전날에는 비료를 쳐야 한다고 해서 갔지만 비가 와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비료 치기는 그냥 논에 비료를 골고루 뿌리면 되는 작업이다. 그냥 뿌리면 되는 작업이지만 비가 오면 비료가 비에 젖어서 비료끼리 붙거나 손에 달라붙어서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산으로 비료가 젖지 않도록 덮어쓰고 작업을 했다. 비는 내리고 우산을 들고 작업하는 모양새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고 어설픈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작업해서 논에 물을 넣었는데 논둑이 떠진 것이다. 비료도 같이 씻겨 내려간 것이다.

그래서 아무 대책 없이 그대로 내 벼려 두고 집으로 왔던 것이다.


집에 와서는 속도 상하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까 동네 이장이 전화가 왔다. 논에 가보니까 일하는 사람은 없고, 논둑은 터져 있는 모양이 노련한 농부의 눈에는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된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기계로 논둑을 해줄 수 있는데, 그 기계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또 빌리려 가기도 시간이 걸리니까 이장의 트럭터에 있는 트럭터 삽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가라 앉히고 논으로 나갔다. 이장은 트럭터로 흙을 떠다가 터진 논둑에다 붇고 있었다. 그렇게 터진 것부터 조치하고, 나머지 약한 부분도 한참을 하니까 논둑이 만들어졌다. 다시 논에 물을 넣으니까 모양은 논이 되는 것 같았다.

원래 이장이 논을 살마 주기로 했던 것이다. 논 삼은 작업을 로터리 친다고 하는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논을 갈다가 갑자기 트럭터가 멈쳐서는 것이다. 아까 무리하게 흙을 퍼서 논둑을 만들다가 고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시 논바닥에 트럭터가 멍하니 서 있는 꼴이 되었다. 논둑 때문에 트럭터가 고장이 났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장은 트럭타가 고장이 나서 작업이 안 되니까 다른 집 기계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일단은 논일을 전문으로 귀농한 사람을 찾아갔다. 사정이 이러니 지금 트럭타로 작업을 부탁하니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까 자기는 기계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보라는 것이다. 그 사람도 핑계를 대면서 힘들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 논이 오랫동안 밭으로 해온 논이라서 작업하기가 까다롭고 힘들기 때문에 작업을 꺼리는 것 같았다.

농사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중간에 어색하게 그만두면, 남보기도 싫고 다른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도 싫어서 다른 동네에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오늘 당장은 안되고 내일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논농사는 전화기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후회가 되었다.

처음 들은 것은 전화로 논을 갈아 달라면 갈아주고, 다음에 모를 심어 달라고 하면 모를 심어주고 나락을 논에서 베어서 추수하고, 말리고, 도정하는 모든 과정은 전화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돈은 주어야 되지만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문제는 돈을 주어도 해 줄 사람 시간이 되어야 해 주는 것이고, 해줄 사람이 해주기 싫으면 전화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 보니까 주인이 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다. 논둑도 힘들고, 비료 치는 것도 힘들었다.

앞으로 논에 피가 나지 않도록 피 약도 처야 하고 논에 물을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도록 늘 관리를 해야 한다. 할 일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이 여기까지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을 것 같다. 당장 모내기는 기계로 해 주지만 그 어린 모를 모판에서 모내기하는 논까지는 주인이 옮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옮기는 것이 만만찮다. 모두 200판을 옮겨야 하는데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하다. 화물차도 없고 리어카나 경운기도 없다. 그래서 이것도 부탁을 해야 하는데 모두가 자기 일이 바쁘다고 핑계를 대면서 안 해주면 곤란한 일이다. 물론 부탁을 하면 들어주겠지만 부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든 지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농사일도 이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부탁만 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데로 따라 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오산이었고, 지금까지 생각한 목가적이고 가을에 잘 익은 황금들판만 생각하던 것이 한순간에 힘든 노동만 보였다. 평생을 일하는 농부들이 그동안에 자기가 하는 일에 나름의 생각과 노하우가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지금 내가 경작하려는 땅은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 준 것이었다. 그러다가 농사할 기회가 있어서 내가 직접 해 보는 것이다. 농사 중에 가장 쉽다는 벼농사만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벼농사는 가장 쉬운 것이다. 쉬운 대신에 그만치 수입도 적은 것이다. 그러니 논에 벼를 심지 않고 수익이 많은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이다. 그 작물은 관리하기가 힘들고 일손도 많이 가는 작물들이다. 힘든 여름에 햇볕 밑에서 고생하면서 일하는 작물이 많다.

벼는 심기만 하고 나중에 약을 한 번 정도 쳐도 좋고, 아니면 그냥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쉬운 벼농사이지만 나는 힘이 들어서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면 기본부터 배워서 농사할 것이다.


내일 모를 심겠다고 통보가 왔다. 모는 이양기로 심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다.

모를 심어주는 분이 오늘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심을 모를 논둑에 갔다 놓으라는 것과 그리고 논에 물을 모두 빼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저녁 무렵이라고 한다. 모를 일찍 갔다 놓으면 모가 마르고, 논에 물을 낮에 빼면 논바닥이 갈라지니까 저녁에 빼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일단은 모를 싫을 차를 빌려야 하고, 저녁에는 물을 완전히 빼야 한다. 농사일이 내가 생각하는 데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모를 심는 사람, 마지막 주문은 논둑에 모를 갖다 놓고 모 위에 무슨 약을 뿌려야 한다고 했다.

이 약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쳐야 하는지를 또 내가 알아서 해야 할 것 같다. 누구 만나면 물어볼 생각이다.

처음에 논농사만 한다고 할 때 친구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농사는 아무나 하나?” 농사도 할 사람이 하고 농사일을 배운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농사도 원리가 있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떨결에 하는 농사는 흥미보다는 온몸이 다 아픈 고된 일이 되었다.


다음날 새벽, 어제저녁 때 어렵게 논둑에 도착한 모들은 이양기에 실려서 심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게 장만한 논이지만 불과 두 시간 만에 다 심겼다. 앞으로 이 모가 잘 자랄지 아니면 죽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설픈 농사꾼이 심은 모가 더 잘 자란다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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